담담히 그려낸 고향의 아픈 과거
이현수 작가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정갈한 문체·깊이있는 묘사'로 생동감
11월까지 토론회·작가 강연회 등 풍성

청주시민이 다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공감과 소통의 지역문화를 창조하고 책 읽는 시민,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06년 부터 시작한 '책읽는 청주 시민독서운동'. 청주시는 '2014 책 읽는 청주' 대표도서로 이현수의 장편소설 '나흘'을 선정하고 지난 17일 선포식을 가졌다.

장편소설 '나흘'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이 사살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충북 영동 출신인 이현수 작가(55)는 이 소설에서 그동안 애써 말하지 않았던 고향의 아픈 과거를 펼쳐놓고 있다. 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당한 피란민들은 철교에서 뛰어내려 노근리 쌍굴로 숨었으나 미국은 굴다리 앞 야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쌍굴을 빠져나오는 양민을 차례로 쏘아 죽였다.

이 작가는 이 사건을 단순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참혹함만으로 다루지 않고, 그 곳에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갈한 문체와 깊이있는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소설은 마치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듯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사투리와 정겹게 벌어지는 재미있는 상황들을 통해 우리에게 감춰져 있던, 감추어왔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며 이야기속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한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토록 거부했던 김태혁은 내시가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대부분의 일생을 살았다. 손녀인 김진경이 노근리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오랜만에 집에 온다는 소식에, 그도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절친한 사이였던 박기훈과 함께 지내던 날들, 쌍굴에서 벌어진 끔찍했던 일, 사촌인 태명과 태명 처, 그들의 딸인 채희의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인영. … 돌이켜보면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쟁은 그에게서 많은 사람들을 앗아갔다. 이젠 진경에게도 진실을 말해줄 때가 된 것만 같다.' (88쪽)

'아들은 내가 십 년 전에 출연한 BBC 다큐 얘기를 꺼냈다. 나 역시 그 방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BBC에서 방영한 노근리 다큐를 보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노근리사건의 핵심 인물은 모두 죽고 주변 인물들만 나와서 저마다 지껄이는 꼴이라니. 박자가 맞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196쪽)

'처음 맞닥뜨린 일방적인 전투, 하늘에서 퍼붓던 F-80 전투기의 요란한 폭격, 피란민의 외침과 절규 사이로 자욱이 덮이던 먼지, 그 여름의 미친 더위, 노근리 쌍굴에서 피란민과 숨 가쁘게 대치했던 삼박사일, 삶에도 컴퓨터처럼 삭제 키가 있다면 당장에 눌렀을 저주받은 나흘의 기억.' (208쪽)


이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2001년 노근리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고향 어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나는 오래도록 혼란에 휩싸인 채 서성거렸고 그 의문으로부터 소설 '나흘'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또 "소설이 막혀 앞이 보이진 않을 때면 고향에 내려가 풀이 무릎까지 수북하게 자란 마당에서 일회용 봉지커피를 타 마시며 노근리 쌍굴을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고 회고했다.

청주시는 청주시립도서관 주관으로 소설 '나흘'을 매개로 다양한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11월까지 다양한 시민 공감토크와 청소년 토론회, 청주시청 공무원 독서동아리 '오거서'와 함께하는 토론회가 열리며, 청주대 총학생회는 재학생들의 독서제고를 위한 주제토론회를 추진한다. 또 이현수 작가 강연회가 오는 30일 오후 2시 청주시립도서관 강당에서 열린다.

유현주 청주시립도서관 팀장은 "당초 5월에 선정되는 '2014 책읽는 청주 대표도서' 선정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독서의 계절인 9월로 늦어졌다"며 "늦게 스타트한 만큼 더 많은 시민들이 독서에 참여하고 행사도 더 짜임새 있게 진행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송창희

333chang@jbnews.com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