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논설실장·대기자

어느나라든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한국사람들은 유독 심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국민들의 공짜에 대한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아는 정치인들에게 '무상복지 시리즈'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공약은 없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는 선심성 복지공약이 얼마나 진화됐는지 보여줬다. 군인들에게 월급 40만원씩 주고 대학생들의 학비를 반값으로 낮추고 영유아는 물론 3-4세 아이들에게 보육료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이 쏟아졌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보육, 무상교육등이 다 이루어진다면 '유토피아'가 따로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처럼 무상복지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것을 그들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공짜를 좋아하는 세태지만 대다수 '무상복지 시리즈'는 신기루처럼 사라질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것은 몰라도 '무상급식'은 오래갈 것이라고 봤다.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에 붙인 오세훈 서울시장을 임기중에 하차시킬 만큼 파괴력있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시·도에서 무상급식이 퇴조현상을 보였지만 적어도 충북의 초·중·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짜점심을 먹을줄 알았다. 무상급식은 충북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폭넓게 실시됐다. 충북이 무상급식의 '모범도'가 된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분담이 크게 기여했다. 충북교육청의 예산만으로 초·중학생 전체 무상급식을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에 무상급식을 확대하는것은 무리였던것 같다. 충북도와 도교육청의 예산분담도 막을 내렸다. 이시종 지사는 고교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데 400억∼500억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이 공약을 폐기했다. '복지교육감'을 내걸었던 김병우 교육감도 재정악화를 이유로 유치원생과 고등학생 급식비 지원 단계적 확대를 보류했다. 이 지사가 돈을 못내겠다는데 김 교육감이라고 뾰죽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유치원생과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형들은 앞으로도 아이들이 '공짜점심'을 먹을것이라는 기대는 접는것이 나을 것이다. 지자체의 예산사정이 좋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나쁜일은 처음엔 선의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있다. 무상복지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복지는 수혜자에겐 달콤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쌓인 무지막지한 부채는 지자체를 골병들게 한다. 지자체는 부채를 탕감해달라고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복지디폴트까지 선언하겠다고 협박한다. 지난주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내년도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하면서 '복지디폴트'선언한 것이 단적인 예다.

18대 대선 당시 보편적 복지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자체의 재정 위기를 방기한 책임도 분명히 있지만 지자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불과 4년도 안돼 무상급식 정책이 후퇴했다. 더구나 이 지사와 김 교육감은 4개월전 지방선거에서 고교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까지 내걸었다. 알았다면 무책임한거고 몰랐다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지자체는 지방재정 악화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자체수입으로는 직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전국 243개 가운데 3분의1인 78곳이나 된다. 특히 1년전과 비교해 보면 38개에서 2배 이상 급증했다. 물론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만 탓할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방재정의 부실화와 재정불균형이 우려의 수준을 넘어 고단위 처방이 필요한 단계라는 점이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인해 지방세 수입이 대폭 감소하는 반면, 복지예산은 급증하고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비 부담 증가 등 세출은 팽창하고 있어 지자체의 가용재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주도하는 무리한 선심성 사업,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낭비성 이벤트 행사 등 세출확대 사업이 걱정될 수 밖에 없다.

레이거노믹스로 미국경제를 호황으로 이끈 로널드레이건 대통령은 "진정한 복지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복지대상에서 탈피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이상론(理想論)이긴 하지만 틀린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짜심리를 유도해 '복지병'을 앓게 하는 것은 올바른 복지가 될 수 없다. '곳간'도 부실한 지자체에서 '무상복지 시리즈'는 이제 한계에 온듯하다. / sjpark@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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