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임정기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띄우려는 여야 정치권의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 뜬금 없이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이 실체없는 정치권의 반 총장 영입설에 대해 마침내 반 총장이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왔다. 반 총장은 지난 4일 유엔 사무총장실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반기문 총장의) 향후 국내 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밝혔다. 이는 정치권의 차기 대권주자 영입설을 공식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 총장은 "국제사회의 결집된 대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 관련 보도가 계속된다면 유엔 회원국들과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불필요한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반 총장측은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 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앞으로도 일신우일신하는 자세로 유엔 사무총장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 총장 흔들기는 현 여야 정치권의 지도력 부재 및 각 당이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인사들은 최근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란 모임을 갖고 반 총장의 차기 대선후보 출마가능성을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친박 의원들은 반 총장을 차기 대권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측과 박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시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등 의견이 엇갈렸다는 후문이다. 친박계 인사들의 이날 토론회는 비박계인 당내 김무성 대표가 '개헌론 불가피' 발언 등 자신들과 엇박자 행보를 보이자 견제 차원에서 영입론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야당 역시 당내 주류인 친노계인 부산출신의 문재인 의원의 대항마로 반 총장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에서 영입설을 제기했다는 해석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은 지난 3일 자신의 회고록 '순명' 출판기념회에서 "우리가 영입해서 (당내) 다른 후보들과 같은 위치에서 경선을 시켜야 한다"며 "반 총장 쪽에서 와서 새정치연합쪽 대선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각종 여론조사 때마다 차기 대권후보 1위를 보이는 반 총장이 여야 모두에게 차기 대선의 필승카드로 탐나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반 총장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자란 충청권 인사라는 점에서 후보로서도 매력이다. 어쩌면 타파하기 어렵고 높은 거대한 장벽과 같은 고질적인 한국정치의 영·호남 구도 하에서 어느 한 쪽이 그를 민다면 단숨에 안정적인 대선후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을 3년여나 남겨놓은 시점에서 여야의 반 총장 영입 논의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이제 출범한지 1년 8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살리기, 남북문제, 한·일관계 등 경제 국방 외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풀어야 할 현안이 쌓여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여야 정치권의 반 총장 영입 논의는 매우 적절치 않다. 반 총장 역시 다자 외교의 중심인 유엔의 사무총장으로서 기아와 빈곤, 끊임없는 종교전쟁에 의한 테러, 에볼라 확산 방지, 북한의 핵문제 및 인권문제 해결 등 남은 임기동안 풀어나가야 할 현안이 산적하다.

거듭 밝히지만 정치권은 당장 반 총장 흔들기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회창, 조 순, 정운찬, 안철수 등의 사례를 통해 정치권이란 진흙탕에 뛰어든 순간 발가벗겨지고 망가져 가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외교 전문가인 그를 뜬금없이 차기대선 후보로 띄워 흔들게 아니라 세계의 외교 대통령으로 그가 남게 여야는 도와줘야 한다. "게으른 농부가 참외농사는 안 가꾸고 야산에 개똥참외 주으러 다니는 격"이라는 모 정치인의 말처럼 여야정치권은 눈길을 외부로 돌리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에 힘써야한다. 외교에만 전념하는 '백로'를 더이상 '진흙탕' 싸움에 끌어 들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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