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꺽정이패들이 한 마디로 말하면 백수들이요, 노마드, 유목인들인 셈이죠. 머물 데 없이 무목 여행을 하는 자유인들! 모두가 정규직만을 목표로 꿈을 접는 세상에 비정규직으로 거침없이 가는 곳이 고향인 사람들, 영화 '군도(群盜)'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비분강개하며 제도를 탓하고 출신성분에 얽매이는 세력이 아니라 청년백수란다.

열아홉 해 홍명희문학제가 열렸던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울려퍼진 말이다. 초청 강사로 온 고미숙 백수의 말에 따르면 백수라고 하면 구죽죽한 츄리닝에 골목을 잠행하는 취업준비생이나 논다니로 보는 세간의 평판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한다.

자본과 권력이 쳐놓은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금거리며 걷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통찰하면 지독한 억압 속에서도 이이겨낼 힘이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공부임을,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로 바꾸고, 알아가면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청년백수, 진정한 호모쿵푸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명희 선생의 소설 임꺽정을 청년백수들의 진진한 삶의 인문학 장터로 만들어놓고 보니 다시 읽혔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따로 없다. 소설 읽기에 참여한 박재동 화백은 미완성인 원고에 '백수'장을 덧붙여야 한다며 좌중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 자리에는 파주시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무거운 얼굴로 앉아있었다. 홍명희문학제가 고향에서 천대받아 파주에서 한다는 제멋대로식 신문보도에 자극받은 보훈단체 사람들이 파주북소리 축제에서 홍명희문학제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임꺽정'을 낸 사계절출판사 사옥에서 하게 되었고, 참관을 온 것이다.

홍명희 선생의 전력을 문제 삼아 문학제 자체를 무산시키고자 하는 뜻이었지만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선생의 삶과 문학을 말하는 강영주 교수의 강연과 청년 백수론을 편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연, 성석제 소설가와 박재동 화백의 소설 읽기 작업을 지켜보더니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문학성을 기리고 살리는 행사임을 실감한 것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겼기에 말이다.

내년, 스무 해를 맞이하는 홍명희문학제가 더 이상 이념의 문제만으로 폄하되고 더 많은 독자들과 청년백수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회를 막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발 임꺽정을 읽어보고 홍명희 선생의 삶 전체를 읽어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공부의 장이 돼야만 한다.

문학제가 단순한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오늘의 일거리와 공부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지역의 대표 행사가 되어야 하고 문화를 읽는 코드가 돼야 한다. 그래서 곳곳에서 임꺽정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시민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임꺽정을 읽고 문학제에도 참여하는 청년백수들이 늘고 있다. 청년의 힘으로, 백수의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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