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정치부장 겸 부국장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대표적인 음성적 예산이다. 아다시피 재량사업비는 의원 쌈짓돈처럼 사업비로 멀쩡히 집행된다. 그러나 지자체 예산서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재량사업비'라는 항목을 찾을 재간이 없다. 실국 사업비와 마찬가지로 '○○사업'으로 기재될 뿐이다. 해당의원이 집행부서 공무원 옆구리를 쿡 찔러 '암호'를 주고받아야 알아 챌 정도이다. 혹여 언론이 재량사업비 규모나 내역을 물으면 손사래 치며 쉬쉬하곤 했다. 예산이 1억~3억원 규모라 소규모 동네 민원사업을 해결해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는 데 제격이다. 그래서 대표적 선심성 예산으로 꼽힌다.

예산 집행 역시 늘 구설이 따랐다. 공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동네 인도 보도블럭이 다시 깔리거나, 아스콘 포장으로 바뀌었다면 아마도 그 사업은 재량사업비로 시행했기 십상이다. 시골마을 진입로 공사나, 동네 공원 놀이터, 체육시설 교체 등 눈에 익숙한 사업들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업 적정성에 대한 판단은 나중 일이다. 소소한 시설이나마 교체하거나, 새로 짓는다는 데 싫어할 주민은 없는 탓이다. 시행업자와의 '뒷말'도 많았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나눠먹기 의혹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 시행을 위해 특정업자를 선정하면 소외된 업자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라며 '폐지해야 한다'며 엄살을 떠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집행 이후에나 생색을 낼만해 편성과 집행 과정 모두 그늘에 가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랬던 게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인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달라졌다. 민선 6기 들어서는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금액을 정해 집행부에 요구하는 양상이 됐다. "3억원을 편성해라. 2억원을 편성해라"는 식이 됐다. 예산 심의 권한을 지닌 의회와 집행부 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으름장' 놓는 듯 보이기도 했다. 도지사가 도의장을 찾아가 편성 규모를 사전 설명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기초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의회로서는 아예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다 판단했을 수 있다. 까놓고 얘기하는 게 일면 당당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양성화를 꾀한 셈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1인 시위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여론이 녹록지 않다. 의정비 인상 요구와 맞물려 당당함은 오히려 '역풍' 됐다. 양손에 '떡'을 쥐어 달라 목소리를 내는 듯한 지방의회의 요즘 모습에 세간의 시각이 곱게 볼리 없다.

법적 요건도 마찬가지다. 지방의원들이 특정사업에 예산을 요구하는 것은 지방재정법으로 보거나, 자치단체 예산편성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자치단체장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2014년 예산에 재량사업비를 편성하는 곳은 5곳에 불과하다. 충북도내 시·군도 재량사업비 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충주와 영동, 단양 등 몇몇에 불과하다. 감사원은 이미 2012년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충북도의회의 경우 1인당 3억원이면 연간 93억원이고, 매칭할 시·군비까지 포함하면 200억원 안팎의 규모로 불어난다. 요즘처럼 지자체 재정난이 심한 판에 1억~2억원 단위로 예산을 잘개 쪼개면 정작 해야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다.

마침 충북도가 12일 개회하는 도의회 정례회에 제출한 2015년 당초예산에 재량사업비를 한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도의원들로서는 펄쩍 뛸만한 일이다. '대세'라며 수긍할지, 음성적 집행 관행을 유지하자 할지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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