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논설실장·대기자

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노인들이 있다. 리어커를 끌며 폐지 줍는 노인들이다. 눈길에 간선도로에서 자동차 사이를 누비는 노인들을 보면 안스럽기에 앞서 불안하다. 폐지줍는 노인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재활용연대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75만명에 달한다. 종이박스를 상가 밖에 내놓는 순간 1시간도 채안돼 사라지는 것은 이들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폐지는 ㎏당 60~70원으로 열심히 주워봤자 이들 노인들의 한 달 수입은 기껏해야 20만원에도 밑돈다.

하지만 노인빈곤은 빙산의 일각이다. 중산층 몰락이 더 무섭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지만 우리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개인소득자 중 48%는 1년 소득이 천만원 미만이라는 분석도 놀랍다. 1천509만5천402명이 이에 해당된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개인소득자 3천122만명의 소득분포를 분석해낸 수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슈퍼리치는 중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씁쓸하다. 우리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자산정보업체인 웰스엑스(Wealth-X)와 UBS은행이 얼마전 발표한 2014년 슈퍼리치 보고서(World Ultra Wealth Report 2014)에 따르면 한국의 슈퍼리치(순자산 3천만달러 이상)는 작년보다 80명(5.8%) 늘어난 1천470명이었다. 또 이들이 보유한 재산은 총 2천800억 달러(약 312조3천억원)로 지난해보다 5.7% 증가했다.

자수성가와 상속의 혼합형(41%)이 가장 많았지만 자수성가형(39%)이 상속형(20%)보다 많은점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슈퍼리치 가운데서도 자산이 1조원이 넘는 '억만장자'는 21명이다. 이는 세계 23위, 아시아에서는 중국(190명), 인도(100명), 홍콩(82명), 일본(33명), 싱가포르(32명), 대만(29명)에 이어 7위에 해당된다.

슈퍼리치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간 양극화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는 현상이 속도감있게 전개되고 있다.

감소하는 중산층은 대부분 서민층으로 전락해 부의 편중현상과 양극화 구조를 보여준다.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을 흔히 '20대80의 사회'라고 한다. 부자 20%와 빈자 80%를 의미하는 말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대다수가 서민층 내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한국은행은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과 자영업자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을 발령한바 있다. 중산층이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침체된 주택경기에 갇혀 한계상황에 달하면서 아랫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슈퍼리치의 증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누군가 편법으로 천문학적인 유산을 받았다는 보도는 서민들을 우울하게 한다. 삼성SDS의 상장으로 이건희 회장의 세자녀들이 5조원대의 재산을 더 불렸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선진국 수준으로 급등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연봉도 마찬가지다.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심리적인 박탈감도 커진다. 숨가쁘게 일해도 박봉을 손에 쥐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2012년 소득 기준으로 근로소득 연말정산자의 평균 급여액은 2천816만원에 불과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그 과실을 다 가져가는 분배구조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사회의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다.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묻지마형 범죄'와 생계난으로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범죄는 갈수록 엽기적이고 흉폭화되고 사회는 삭막해지고 있다. 반면 가진자들의 윤리의식 부재도 심각하다. 세월호 참사와 대한항공 '땅콩리턴사건'은 이런 현상을 웅변한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압축성장의 단면으로만 볼 수 없다. 양극화로 사회적 불만 세력이 집단화되면 사회는 극도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되지 못하면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지금까지 이룩한 경제발전이나 번영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공직개혁은 지지부진하고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3%대 초반으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한국개발연구원)이 나온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비선실세 의혹'이나 '십상시', '찌라시' 타령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경제는 악순환을 겪는다. 가진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이 더욱 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희망을 줄 수 없다면 최소한 절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 엄동설한에 폐지줍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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