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아무도 이렇게까지 올해 기름값이 폭락할 거라고 얘기한 데가 없다. 내로라하는 연구소든 유관 단체든. 갑작스런 일이라 신이 아닌 이상 누가 알겠느냐고 항변하면 그 또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왠지 무엇인가에 속은 듯한 느낌은 뭐지? 아마 기름값이 별로 변동이 없을 때 폭락한다고 했다면 여론의 뭇매를 감당할 맷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은 당돌한 소수에 끼기가 부담스러워 평균에 수렴한다. 변명은 좋지만 그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아쉽다. 뒷북으로 난리치는 건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인데, 거기에 한술 더 떠 장밋빛이나 잿빛 전망 일색으로 어떤 현상을 강화시키는 건 또 뭔지.

그만큼 당황스럽고 급작스런 일이 하반기 기름값 폭락이다. 우리나라가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불과 8월에만 해도 베럴당 100달러가 넘던 것이 지금은 50달러가 위태롭다. 어림잡아 수개월 사이에 40%가 넘게 폭락했다. 그래프를 바라보니 가히 절벽에 가깝다.

한참 기름값이 올라갈 때는 기름값이 얼마가 넘으면 자동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예측한 가격에 도달해도 자동차는 줄지 않았다. 예측이 틀린 것이다. 아니 우리가 아는 상식이 틀린 것이다. 자동차는 이제 기름값과 큰 상관 관계없이 이미 생존 수단 내지는 필수품화 된 것이다. 자동차가 많지 않을 때 기준으로 바라보니 예측이 틀릴 수밖에.

기름값과 우리나라 경제의 관계도 그렇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우리나라 경제에 좋다는 게 대개의 의견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고성장기에 기름값이 떨어지는 것하고 저정상기에 기름값이 떨어지는 것은 패러다임이 다르다. 기름값이 떨어져 원료값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물가가 떨어져 수요가 늘어난다는 직선적인 논리는, 분명 경제활동만 놓고 보면 당연히 맞는 말인데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되는 상황에서 꼭 반갑지만은 않다. 가격 하락이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이미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쉽사리 살아날 것 같지 않고 기업의 재고만 늘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다. 여러모로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많이 뒤집히고 있다.

또, 기름값의 지나친 하락은 기름을 팔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산유국에도 타격을 심하게 준다. 문제는 이런 영향이 그나마 잘 나가는 나라까지 영향을 줘 세계 경제 전체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는 독불장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덩달아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게 엉뚱하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경제 변수는 큰 변동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여서 예측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각 경제변수의 변동성이 커졌다. 가장 중요한 변수인 유가, 환율, 금리, 주가 등의 등락폭이 커지며 경제주체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너무 강해진 달러와 미국 금리 인상을 계기로 신흥국들의 외환 위기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어차피 돈은 잘 돌아가는 나라, 금리가 높은 나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진 나라가 터지게 되어 있다. 또, 어디선가 터져야 그것을 바탕으로 수습이 되는 희한한 구조다. 안타깝지만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제발 내년에는 우려하고 있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이를 막으려면 전 세계적인 공조와 균형이 필요하다.

모처럼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가는 마음이 편하다. 예전 같으면 지금 가격도 싸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자리가 다른 기름값을 생각하면 여유롭다. 기름값 폭락은 이제 팩트가 되었다. 모든 경제현상이 그렇듯 예측은 어렵지만,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가는 것은 차선의 좋은 방법이다. 왜 그러냐, 나한테 불리하다, 라고 푸념 할 것 없이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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