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림' 그리는 이희정 작가를 만나다

"'2014년 청마의 해. 희정, 너의 해가 밝았어. 올 한해 화이팅! 이야'라는 응원을 들으며 올 한해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한 해의 끝에 서 있네요."

이희정 작가(34).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유는 말을 그리는 '말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어느날 밤, 은빛 사막에 모래바람이 일고 그 위를 만화속 주인공 차차가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흰말을 끌고 가는 꿈을 꾼 이후다. 꿈속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고 아름다워 스승에게 꿈을 이야기했고, 그 장면을 그려보라는 권유에서 그녀의 말그림은 시작됐다.

그 작품은 '꿈에 취한 그녀의 편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7년 아트서울에 출품돼 주목을 받았다. 이후 본격적인 말그림 작업이 시작되어 '네가 알고 있는 것'과 '너에게 가는 길', 두가지 시리즈로 발표됐다.

좀 더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일산 원당승마공원을 수차례 찾아 말과 대화하고, 사진도 찍고, 또 승마를 배우며 말의 생김새는 물론 말의 생태를 연구했다.

"말은 정말 총명하고 매력적이에요. 말을 관찰하면서 눈동자가 얼마나 맑고 깊은지 알게됐고, 말이 필요없는 깊은 눈빛을 읽게 되었어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모습에 '하나님도 말을 창조해 놓고 흐뭇해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죠."

이후 그녀는 더 자신있는 말 그림을 그리게 됐고, 말의 모습도 훨씬 다양해졌다. 게임하는 말, 컬러풀한 옷을 입은 말, 반신욕하는 말, 하늘을 나르며 산책하는 말 등 자신의 일상으로 말을 불러들여 대화하고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게 됐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말은 늠름하고 근육질이 있는 역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성적이며 평온한 모습이다. 긴 속눈썹과 실제같은 깊은 눈을 가진 말을 중심으로 작품 뒷배경에는 꽃비가 내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제 말은 그녀 자신이기도 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의 그런 말 그림은 2010년 서울국제 아트페어와 크고 작은 전시회에 모습을 들어내며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어느날, 그림속의 말이 저에게 말을 건네는 거에요. '너가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이야?' 하며 지긋이 저를 쳐다봤죠. 그 눈빛이 저를 안심하게 했어요. 저를 평온하게 만들었죠."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도 말의 깊은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하기를 바란다는 그녀는 자신을 한껏 드러내며 "Look at me!"라고 말하는 말, 해리포터 안경을 쓰고 "I just wanna see you"를 외치는 말, 꽃울타리를 품고 사랑을 나누는 'The sweetest days' 등의 작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올 한해 '말의 해' 덕분에 작품도 많이 판매됐고, 마사회 잡지의 표지도 장식했고, 드라마 주인공의 방 벽면에 작품이 걸리는 보너스도 받았다. 그녀의 대표작이 '꿈에 취한 그녀의 편지'는 소외어린이들의 음악봉사에 힘쓰고 있는 Y JIN 컴퍼니의 블레스 챔버오케스트라 연습실에 걸려있다. "우리 연습실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다루면서 항상 보게 하고 싶다"는 Y JIN 컴퍼니 대표의 이야기에 서로 마음이 통해 기쁜 마음으로 보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말아, 너도 이곳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들어 좋겠구나" 하면서.

"예전에는 이런 거 그리면 욕 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젠 아기도 낳고 배짱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올 한해 말과 함께 하며 얻은 것은 역시 정성을 다한 작품은 관람객들도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 진심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청마의 해, 행복했구요. 이런 마음을 에너지 삼아 더 도약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내년에도 말 그림은 계속 될 것이고, 그 안에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계획이라는 이 작가는 충북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먼 훗날 청주에 '채색화 박물관' 건립을 꿈꾸며 채색화가 갖는 특유의 세밀한 밀도표현을 바탕으로한 색의 발전을 탐구해 오고 있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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