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교육의 도시, 청주(淸州)를 들어서면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플라타너스이다. 교육의 요람, 청주대학교를 들어서면서도 반갑게 맞는 것은 플라타너스이다. "플라타너스,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김현승의 시(詩)가 사람들에게 있어 인생의 반려가 된 플라타너스를 이야기하듯 청주대학교를 안내하는 믿음직한 플라타너스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깊고 깊은 정(情)을 사모하게 한다.

청주대학교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되면서 촉발한 학내 갈등이 수많은 동문과 지역 주민의 우려 속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얽어맨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멍에는 학교 구성원의 노력에 의해 매년 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학내 갈등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각종 언론을 통해 직접적 원인이 회자되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에도 문제 해결을 못하는 것은 공공 교육기관의 구성원들로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결과에 대한 판단도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따라서 원인에 대한 논쟁을 지속하게 된다면 무한소급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 갈등은 서로를 상하게 해 모두가 패배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특히 지루한 논쟁과 대립은 감정적 갈등으로 전이돼 본질을 벗어나는 행태로 변화되기도 한다.

한 예로 최근 일명 땅콩회항 사건으로 조모 부사장이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짚어야 할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불합리에 대한 개선일 것이다. 관련자를 교도소로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합리를 혁파하고 권한과 권력 사용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당사자만을 때리는 것에 매몰되는 분위기는 아쉬운 부분이다.

따라서 대립의 양측 모두는 객관적 사실은 법을 통해 판단하고, 근거 없는 정당성이나 절대적 입장을 견지하는 입장이라면 한 발 양보하여 조속한 타협을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청주대학교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68년 역사를 이어온 명문 사학이다. 따라서 교육구국의 창학 이념을 채워갈 중부권 명문 사학으로서 대립과 갈등을 하루 빨리 접고, 동문과 지역 주민의 사모함을 받아 줄 수 있는 커다란 그릇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청주대학교 입구를 들어서면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넉넉한 모양새로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한때는 거칠게 저항하는 학우들에게 던져진 최루탄을 온 몸으로 혼자 고독히 막아서며 읍소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고난의 세월을 거름 삼아 세계 속에서 용솟음치는 위상을 보여 줄 때이다. 말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어느새 우리가 된 플라타너스는 그 길을 밟고 있는 청주대학교 교직원과 동문들에게 말하고 있다.

인재의 산실에서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해 봤는가. 스승과 제자는 앎의 코뮌을 이루고 있는가. 선배는 후배에게 웅대한 비전과 찬란한 희망을 보여줬는가. 최근 수년 간 청주대학교 외부 환경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시설과 환경이 좋다고 해서 창조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환경 변화도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논객 허후는 시비음을 통해 시비진시시환비(是非眞是是還非)라 노래했다. 시비를 따지게 되면 옳은 것도 글러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진실한 것도 섣부르면 흉할 수 있다. 특히 청주대학교 갈등은 대화의 주체들이 공통된 정체성을 갖고 있고, 추구하는 목적에 동일성을 갖고 있으므로 상호 존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향하면서 충분히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신임 총장도 본교 동문으로서 학교 발전을 위한 열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 빨리 주체 간에 능동적 교감이 만들어져 조속한 타협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말없이 바라보는 동문들과 지역 주민은 국내 최고의 명문사학,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학인 청주대학교를 믿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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