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문화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정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결국 '우리 삶의 총체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특정 지역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그 의미를 연장해 본다면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자긍심은 물론 문화수준, 문화역량, 문화활동 등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듯 문화의 정의와 문화의 활용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많았다. 이른바 응용적, 실용적 관점에서 그러했으리라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면서 그렇다면 왜 문화일까 혹은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른바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남성 대 여성, 폭력 대 평화, 경쟁 대 화합, 불통 대 소통, 독점 대 공유에 대부분 후자에 위치할 것이다.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논의들, 예컨대 제3의 길 등등이 활발한 상황에서 특히 후자적 논의와 입장의 의미는 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서울과 지방의 대립구도와 차별에 따른 실질적 피해는 물론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교육의 조차도 경쟁의 과도화로 인해 청소년들이 겪는 아픔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20대 청년층들에게 해당되는 취업의 두려움, 30~40대 기혼자들의 주택난 육아 및 보육, 직장내 불합리한 문제 등등 우리 주변은 지역작가의 그림 한 점을 관심가지고 온전히, 서양고전 음악 한곡을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경제의 논리로 국한된 현실이니 문화는 그저 소품 이른바 악세서리화 된지 오래라는 말을 꺼내기도 식상하다.

이러한 점에서 더욱더 우리는 오늘 문화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문화의 핵심은 마음이다. 문화가 인간의 총체적 모습이라면 이러한 모습을 총괄적으로 표출해내는 것은 마음 혹은 의식 또는 정신의 영역일 것이다. 이는 우리 지역에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에 의해 '직지심체요절'이 발간되었음은 범상치가 않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가르치는 의미는 아마도 짐작들 하겠지만 욕망, 분노, 화, 미움 등등 마음의 부정적, 감성적 측면에 대한 달램, 어루만짐이 아니겠는가. 이는 둘레길, 올레길, 물레길, 양반길 등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만들어진 힐링을 위한 길들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나 관심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 해답은 다 나와 있다. 다만 실천이 안될 뿐이지. 즉 공부, 수련, 수양, 명상, 느림, 나눔일 것이고 이러한 것들을 한마디도 줄이면 '그럴수도'일 것이다.

남들이 하는 일이 불륜이고 내가 하는 일이 로맨스라면 관점을 바꿔서 그럴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우스개 소리로 수양과 수도를 하는 분들이 가장 못하는 수도(修道)가 바로 그럴수 도라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 지역에서 남들이 안하는 혹은 남들과 다른 문화를 만들 가능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문화의 핵심이 인간이고 인간은 정신, 의식, 마음의 산물이라고 한다면(굳이 유심론적 접근이라고 정의하지는 말자) 우리 지역의 이미지인 느림은 곧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이는 경쟁에서 질 줄 아는 아량이며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아닐까.

따라서 우리 문화, 지역 문화의 정체성은 느림과 나눔에 대한 철학적, 소통적 관점을 중심으로 나누어야 할 듯싶기도 하며 이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별전 예술감독을 맡은 프랑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언급한 한국공예의 영혼, 종교와 같은 심미적 내용에 대한 언급을 곰씹어 볼 때이기도 하다.

행복과 사랑이라는 서양적 가치나 의미가 이미 우리에게 체화 된지 꽤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그가 제안한 사색하기는 다름 아닌 상대의 마음을 읽고 또한 가치나 의미를 같이 나눈다는 점에서 바로 지역의 정체성인 직지와 다름이 아닌 하나라는 점에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표출하고 느끼느냐의 문제이고 이런 점에서 가을까지 지역민들께서는 늘 '문화와 마음'을 생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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