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출근길 늘 듣는 라디오 아침프로그램에서 먼길을 출퇴근하는 애청자 두명의 사연이 소개됐다. 그 중 한사람은 청주 오송에서 서울 강남 테헤란로까지 매일 출근하는 30대 직장인이었다. '워킹맘'인 그는 아침 7시 오송에 있는 집을 나와 걷고, KTX와 지하철을 이용해 9시쯤 회사에 도착한다고 했다. 바이오산업의 중심지인 오송이 수도권 베드타운 역할도 하는 것이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불과 서울까지 50분 안팎에 주파하는 고속전철 덕분에 가능해졌다.

요즘 오송역을 가보면 눈이 휘둥그레 진다. 늦은 시간에도 많은 승객들이 황량한 콘크리트 역사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호남고속철 분기역이 되는 올해는 승객이 4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역이름이다. '오송역'하면 외지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체 오송이 어디에 붙어있느냐며 뜨악한 표정이다. 사견이 아니다. 어느 자리에서도 오송역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는 수시로 듣는다. 더구나 통합청주시가 출범한 이후엔 오송역 명칭변경이 공론화된듯한 분위기다. 그런데도 청주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무분별한 명칭 변경은 상당시간 혼란을 초래하고 더 큰 경제적 손실을 부를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여유를 갖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얼마나 공감할까. 당장 2개월안에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된다. 분기역으로 위상이 달라질 시점에서 역이름을 바꿔야 한다면 서둘러야 하지만 그는 답답할 정도로 뜸을 들이고 있다.

통합청주시가 출범한지도 벌써 8개월째를 맞고 있다. 짧은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인구 84만명의 준대도시에 걸맞는 경영능력은 아직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청주시가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청주공항 MRO사업이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변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요 지역현안에 대한 행보를 보면 안타까움이 들때가 더 많다.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중 하나로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공예비엔날레'도 그 중하나다. 공예비엔날레는 올해 칼라가 확 바뀐다. 지역작가가 대거 참여한다. 국제행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사연은 이렇다. 이 시장이 지역 공예작가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국제공예비엔날레에 지역자가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불만을 접했다. 이에 따라 총감독은 없애고 섹션별로 감독을 선임했다. 그동안 총감독은 국내 미술계에서 널리 알려진 인사를 섭외했다. 2년전 행사의 총감독은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었다. 해외작가와 국내작가를 고르게 선정하다보니 지역작가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시장 입장에선 국제공예비엔날레가 지역 공예산업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틀린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공예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토양과 기반을 닦는 것은 중요하지만 국제비엔날레는 그 시대 국제공예예술의 이슈와 담론을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 한다. 혹시라도 국제공예비엔날레를 지역중심으로 하려면 아예 '국제'라는 명칭을 빼야 한다. 정체성이 모호한 행사가 공신력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오락가락하고 있는 청주시 청사문제도 아쉽다. 당초 청사 용역결과는 신축이었지만 한달여전 수천억원에 달하는 청사 예산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 시장은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는 청사 주변 매입 대상인 청주병원, 청석빌딩, 농협충북지역본부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소요비용을 분석해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 증·개축해 본청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이 발상의 전환을 하게된 것은 '아이디어 뱅크'인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의 충고 때문이다. 예산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부채에 짖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시는 기존 건물 철거후 지상 15층짜리 청사를 신축할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쓸지 결정을 유보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본선에선 현시장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뚝심과 승부근성으로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막상 통합시장이 된후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모셨던 한승수 전국무총리로부터 "행정능력과 정무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왠지 촉이 무뎌진듯하다. 시 공무원들 조차 이 시장의 추진력에 회의를 품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들린다. 통합시의 미래청사진은 그의 어깨에 달려있다. 남은 3년여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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