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 캠페인 기부스토리 시즌2 이름없는 천사를 찾아떠나는 나눔여행] 녹십자 충북 음성공장

녹십자 충북 음성공장은 2008년부터 클릭 한번으로 직접 사연을 읽고 원하는 만큼 후원금을 낼수 있는 맞춤형 나눔 '매칭그랜트'로 직원후원금 등 20억을 공동모금회에 전달하며 봉사와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 김용수

만지작만지작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 동전을 쥔 내 손이 연신 꼼지락거린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아폴로(빨대과자)'나 '깐돌이'를 사 먹을까 아니면 고스란히 500원을 내야하나. 집을 나와 학교를 가며 연신 나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아폴로와 깐돌이'의 달콤함을 떠올리면서도 왠지 모르게 잘못을 하는 것 같아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려 울상을 짓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학교 앞까지 다다른 어린 나는 학교와 문구점을 번갈아보며 또다시 울상이 된다. 그러다 작심을 한 듯 문구점으로 달려가 '아폴로 딸기맛'을 하나 들고 주인아저씨께 500원을 불쑥 내밀고 400원을 거슬러 '찰랑찰랑' 호주머니 속 동전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른 학교로 뛰어간다.

어린 시절 강원도 평창의 어느 산골 조그마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렇게 해마다 한두 차례 있었던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생전 처음 400원을 냈다. 줄을 서 성금을 낼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또다시 왠지 모를 잘못함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고 손에 쥔 400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한편으로는 주머니 가득한 아폴로를 먹을 생각에 즐거웠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길게도 주절거린 듯하다. 갑자기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잠자던 아련한 향수가 잠시 잠을 깬 것은 지난 나눔여행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아날로그적이었던 내 생의 첫 나눔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장흥석 녹십자 음성공장장

지난 여행지는 녹십자 충북 음성공장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나눔천사도 녹십자 직원들이다.

"추운데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라며 환한 미소의 이곳 공장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장흥식(54) 공장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를 뒤따라가 들어선 사무실 한쪽에 'Mission & Vision'이란 글귀와 '인류의 건강한 삶에 이바지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Mission)이며, 건강산업의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이상(Vision)입니다'라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잠시 이것을 바라보는 사이 눈치라도 챈 듯 장 공장장이 녹십자의 기업정신을 간단히 들려준다.

"설명을 안 해도 아시겠죠. 그래도 조금 보태자면 모든 이가 질병으로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정신적인 안정 속에서 생활하며 행복을 느끼도록 돕고 거드는 것이 우리 회사와 직원의 보람이자 자부심입니다"

어느 회사나 나름의 기업정신이 있다. 하지만 녹십자와 직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조금 남달랐다. 녹십자가 추구하는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가 봉사배려(Care & Compassion)로 이웃을 보듬고 끌어안는데 앞장서고 있다.

안근섭 일반지원팀 부장

"삶의 희망을 되찾게 해 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겠어요. 그 바탕에는 희생과 봉사라는 뿌리 깊은 녹십자 정신이 있는 것이고요"

인간존중(Respect & Dedication)은 녹십자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핵심가치라며 함께 자리한 안근섭(56) 일반지원팀 부장이 장 공장장을 거든다.

안 부장은 "녹십자의 사명은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에서 시작됩니다. 생명은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며 "그런 것을 알기에 모든 직원이 나눔에 거리낌이 없고 봉사와 배려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정말 녹십자 음성공장 직원들의 나눔과 봉사 그리고 배려는 자랑할만했다. 복지시설방문 봉사는 기본이고 집수리, 환경정화, 방역활동, 재난재해 복구지원 그리고 직원들의 8개 동호회에서 하는 것까지 합하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라는 것인데,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할 때 손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맞춤형 나눔이다.

회사 내부 전산망에 지역의 어려운 이웃의 딱한 사연이나 사정 등이 개인별로 게재돼 있어 직원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아이디로 접속해 이것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클릭 한 번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다.

박민철 과장

이렇게 모아진 후원금은 충청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우리네 이웃에게 온기를 가득 품고 전해진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런 '맞춤형' 나눔으로 전달된 직원 후원금만 10억원, 회사 후원금 10억원 등 모두 20억원에 달한다.

사내 봉사왕인 박민철 과장은 "한 사람이 한 개의 구좌 2천씩 모두 15개 구좌로 후원을 할 수 있어 손쉽게 기부하는 모두가 흐뭇한 나눔"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디지털시대를 대표하는 '클릭' 한 번으로 모두가 흐뭇하게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처음으로 했던 나눔의 아날로그적인 향수가 떠오른 것이다.

녹십자 음성공장 직원의 나눔을 보며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각박해진다고 해도 어떤 방법이던 무엇으로 건 이웃을 보듬는 '나눔천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첫 나눔의 향수와 함께. / 엄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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