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시청 앞 구둣방 아저씨는 며칠 전에 친한 친구 하나를 잃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고 웃으며 살자고 술 마시고 기분 좋게 악수하고 돌아선 친구가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고 한다. 친구가 죽은 산에서 가까운 한 평도 안 되는 아저씨의 구둣방에는 매캐한 냄새로 가득하다. 구두 밑창을 죄는 강력본드와 구두약 냄새 속에서 오늘도 쉴 틈이 없다. 술 마시고 산에 올라 친구들에게 일일이 안부 전화까지 하고 죽었다는데, 죽고 싶다는 털끝만큼 아쉬운 소리도 안하고 죽었다는 게,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텐데. 그런다고 쓰나미처럼 밀려왔을 죽자는 친구의 결심을 막을 수야 없었겠지만 아저씨는 몇 켤레의 구두 밑창을 연달아 갈고 남은 조각을 떼어내 마감하고 굽을 갈고 두 손가락에 천을 감아 질끈 엄지손가락에 비끌어매고는 구두약을 눈물처럼 찍어 바르고는 불광을 내고 기어이 새 구두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 결연함이 눈물겹다. 내가 곧 죽고자 마음먹고 아저씨 같은 친구에게 찾아와 마지막 인사대신 술 마시자고 해놓고 쓰다달다 말 못하고 술 한 잔 나누었더라도 끝내 말 못했을 것처럼. 죽고 싶다는 말 힘들다는 말, 외롭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웃으며 살자고, 복 많이 받으라는 말만 덩그러니 내려놓고 갔을 친구의 그림자가 문턱이 쓸리는 기분이지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할 뿐이다.

밑창 다 닳고 긁히도록 광 한 번 안 내주고 신고만 다닌 내 구두를 온전히 내어주고 아저씨의 왼손가락에 인이 박인 구두약과 검게 튼 손을 보고 있자니 죽고자 마음먹은 것조차 사치이고 밑창이나 굽만도 못한 인생이 연탄재만 차고 다닌 것은 아닌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조용히 어깨 두드려주고 다시는 짐이 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구두 한 켤레 남기고 죽었을 것이란 생각.

아저씨는 밑창 갈고 굽갈고 광내고 살아온 고수답게 죽어가던 구두를 기어이 새것으로 만들어놓고는 싼 구두 비싼 구두가 어디 따로 있더냐싶게 내 발을 부끄럽게 만들고야마는 것이었는데 반이나 닳아버린 구두에 새 굽을 달고, 물광, 불광, 그것보다 더 반짝거리는 손광으로 마무리한 구두를 신고 나오니 새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바깥으로 쓰러지는 발걸음을 단단히 부축해 주는듯 걸음걸이부터가 달라지고 반짝이는 구두코에 얼굴을 비춰보며 걷게 된다. 누가 죽었다는데, 아저씨의 친한 친구가 가족과 헤어져 우울증 앓으며 환갑을 맞을 뻔했던 낡은 구두 한 켤레 ㅡ 이렇게까지 표현하지 못한 점 사죄하는 마음으로 ㅡ 가 갱생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 날이라는데, 맵찬 추위에도 더 밝고,질끈 힘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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