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우리는 화가 난다고 차로 사람을 받아버리는 분노조절장애를 안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또한 우리는 법 위반의 대가로 범칙금을 지불하면 죄가 없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약 5천개의 법령이 촘촘하게 실행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해마다 새로운 법이 약 25건씩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행복추구가 불가능한 국가로 인식돼 가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국가와 정치권은 증세 없는 복지의 가능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한다. 출산장려를 위해서 젊은이들에게 후세의 가치에 대해서는 설득하지 않는다. 출산 및 양육비 지원금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출산장려정책을 복지정책으로 둔갑시켜 정치적 표로 연계하는 꼼수는 아니겠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결정을 그렇게 바라보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사회적 지도계층의 잇따른 파문은 우리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국민의 사고(思考)를 부정적 패턴으로 전이시키고 있다. 약 5천700억불 수출을 기록한 현재나 100억불 수출 탑이 달성된 39년 전이나 국민 생각 속에서 선진사회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이다.

종교가 '사랑'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과학은 '진실'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은 시절에는 인간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죽고 죽이는 악의 사슬만이 존재했다. 중세 이전의 유럽사회가 역사를 통해 검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종교가 과학을 인정하면서 과학이 발전했다. 이를 통해 사랑도 확산되고 다양한 진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한 국가들이 발전해 진일보한 인류사를 만들어 갔다. 우리 역사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보다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갈등이 심했다. 마음먹는 것과 실천하는 것, 관념과 현실 등이라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현실적이고 현상적인 것보다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것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한 사조가 정점을 이룬 시기가 퇴계 이황의 시대였다면 4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극명하게 현실과 현상에 집착하는 사회가 되었다. 수긍의 여부를 떠나 국가 정책, 사회 제도를 보고 판단해보자. 법의 제정 건수가 많은 것에 비해 시민 정신의 계도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사건사고를 통해 사회 발전을 위한 본질을 규명하는 것보다는 정치적 또는 법적 잣대에 함몰한다. 그렇다보니 짧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차라리 현재를 즐기자는 회의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판례, 정치적 결정, 정부의 정책이 추진되다보니 절대적인 진리, 진실에 대한 존재성을 부정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지원을 무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자 하는 열정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모든 불합리는 법적 문제로 치부하고, 군중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세력화를 통해 상대를 압박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를 이룩해 국민 행복지수를 높이고자 한다면 국민의 정신, 가치관 정립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법이 만능이 아니고 현실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저주하는 사회악이라고 하면서도 그 스토리에 몰입되는 국민이 대다수이다.

국민통합을 통해 선진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선행(善行)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긍정적 사고를 학습하는 국민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IT의 발달로 다양한 소통 창구, 매체, 네트워크가 있으므로 가능하다.

종교와 과학이 공존하면서 선진 유럽사회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선진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현실과 관념을 공존시킬 수 있는 것에 노력해야 한다. 영화 한편은 천만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한 매체를 통해 국민의 존재 가치, 사회 구성원이 갖추어야 할 덕목, 인간의 선(善)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 학습을 시도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뿌리는 국민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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