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예술고등학교 합동시집 '너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 발간

 '이미 해는 부끄러워 / 얼굴을 바알갛게 붉히며 / 사라진 지 오래인 하늘을 /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으며 / 멍하니 버스 안에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 아침에는 싱그럽게만 느껴졌던 / 똑같은 풍경이 / 지금은 그저 아련하고 / 서럽게만 느껴진다 /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는 이 풍경이 / 하나하나 의미없이 / 그저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 늘 이 시간만 되면 / 가슴 한구석이 / 아리고 쓸쓸해져 온다 / 밤 9시 15분 /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 출발하는 시간' - '9시 15분' 박소향(미술과 1)

 

 '찢어질득 말 듯한 / 커다란 포대 자루를 한손에 들고 / 한손에는 집게를 들고 / 신나는 마음으로 따러 간 밤 / 산위에 올라가니 / 위에도 밤 밑에도 밤 / 사방팔방이 모두 다 밤 / 따가운 가시 속에 숨어있는 / 3개의 밤 / 그 모습이 꼭 / 우리 남매 같다 / 등에 가시를 달고 동그랗게 둘러싸 / 우리를 보호하고 희생하는 부모님 / 그 따뜻하고 / 부드러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삼남매 /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이 없었다면 /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우리 남매 / 가시에 무엇이 닿아도 가시로 무찔러 버리는 우리 부모님이 나는 /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 '밤' 유승희(음악과 1)

 

 충북예술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시집 '너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고두미 출판사)를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1학년 학생 103명이 쓴 시 151편이 들어있는 이 시집은 한 학생이 적게는 1편에서 많게는 3편까지를 썼다.

 1부 '마음의 숲'에는 사춘기를 막 빠져나온 학생들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이 담겨 있다. 버스, 빈자리, 빗소리, 시간, 꿈 등을 소재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각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감성과 현재의 고민들이 풋풋하게, 때론 청소년기의 눈높이 감성으로 담겨있다.

 2부 '예원동산'에는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이 녹아있다. 예원동산은 충북예고의 캠버스를 이르는 별칭으로 내 악기, 경기민요, 비올라 등 예술고 학생다운 소재와 잠, 시험기간, 페이스북, 매점, 방학, 교복 등 학생다운 발랄함과 재치를 표현하고 있다.

 '충북예술고등학교 / 내가 중학생 때 처음 들어본 학교 /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학교 / 충북예술고등학교 / 이제는 내가 다니는 학교 / 항상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학교 /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학교 / 나에게 희망을 주는 학교 / 크기는 작지만 / 나에게는 어떤 학교보다 큰 충북예술고등학교'

 신한길(미술과 1) 학생은 '충북예술고등학교'를 제목으로 이 학교의 입학이 중학교시절 자신의 꿈이었으며, 이제 이 곳이 또 다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발판임을 노래하며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3부 '미운 정 고운 정'에서는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환을 표현한 작품들이 들어있다. 내 친구 이지현, 진짜 친구, 정진명 선생님, 요구르트 아줌마, 교장선생님 등의 작품속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과 일상에 대한 감성들을 엿볼 수 있다.

 이번 합동시집은 엮은 사람은 이 학교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정진명 교사다. 지난해 충북예술고로 전근 온 정 교사는 수업시간과 수행평가 숙제로 학생들이 짬짬이 낸 시들을 모아 이번 시집을 엮었다.

 또 책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고두미 출판사의 류정환 사장이 흔쾌히 도움을 줘 생각보다 쉽게 결실을 맺게 됐다. 평소 정 교사와 친분이 있던 류 사장은 학생들의 원고를 보고 선뜻 종이값만 받고 출판해 주겠다고 한 것.

 '학생들의 눈은 그 자체가 시(詩)'라고 말하는 정 교사는 "나도 평생 시인이라는 호칭을 달고 살았지만, 학생들이 쓴 시를 읽다보면 문득 시인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며 "이 시들은 학생들이 무심코 쓴 시이지만, 그 어떤 시보다 순수하고 솔직해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집은 학생들에게 꿈을 실현하고 학창시절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며 "이런 참신한 기획시집이 많이 나와서 타성에 젖은 어른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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