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홍양희 충북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유백색의 광택이 나는 통통한 쌀을 골라 쌀이 비칠 정도의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4~5회 잘 헹궈서 손등이 찰랑찰랑 할 정도의 높이로 밥물을 잡은 다음 쌀을 불렸다가 솥에 열을 가하여 타지 않도록 밥을 짓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뜸을 들여야 하는데, 뜸이란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속속들이 잘 익도록 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지역산업정책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뜸들임도 없이 솥뚜껑을 열었다 닫았다하면서 잘 익은 결과를 얻고자 하였다. 정부가 교체되는 시점에서 전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효율성 및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 결과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인가? 새 정부 임기동안 색깔을 분명히 하기 위한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등장한 것인가? 쌀밥을 짓던, 잡곡밥을 짓던 뜸을 들여야 골고루 잘 익은 밥이 되는데 새정부 출범과 함께 어김없이 새롭게 시작되는 지역산업정책들을 보면 실행도 되기 전부터 이미 실패의 결과가 자명한데도 조급히 추진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지역산업정책이 바뀔 때마다 예산의 쏠림 현상은 물론이고 추진 프로그램의 변화 속에 예측가능성이 결여되어 고객 기업들의 혼선이 야기되면서 그 불똥은 고스란히 일선의 추진기관이 맞게 된다.

지역산업정책은 10여년간 산업클러스터론의 관점에서 시도별 전략산업, 광역경제권별 선도산업 등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이를 해소할 필요성이 증가하였고, 외환위기 이후 지방산업이 더욱 위축되어가는 상황에서 1999년부터 지역혁신체계구축, 지역별 주력산업 발전, 지방과학기술 육성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전략산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12년까지는 5+2 광역경제권 선도산업과 병행하여 추진되었고, 이는 행정구역을 초월한 경제권 단위의 협력을 통해 중견기업들이 조기에 성장을 일궈냄으로써 그 과실을 배분하는데 목적이 있었으나 실질적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다.

최근들어 산업 및 기술의 융복합화 추세가 확대되면서 특정산업의 특화발전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컨대'소재-부품-모듈-완제품-시스템-서비스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의 필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산업클러스터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산업생태계 관점에서 지역산업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선도적이고 창조적 마인드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경제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출범은 현정부의 대표적 지역산업정책이라 할 수 있다. 역대 정부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들을 다양하게 펼쳐왔으나 실제 각 지역마다 특정산업을 중심으로 대기업이 선도하는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대통령의 임기와 궤를 같이하며 조기에 성과를 내고자하는 무리한 욕심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창조경제는 상호 신뢰에 기반한 수평적이고 쌍방향적 의사소통의 문화가 생태계로 정착되는 가운데, 실패를 용인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학습효과는 물론, 성과를 공정히 공유하는 문화가 저변화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동안 대기업의 경영활동이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개인이나 조직 모두 그 동안의 관행 내지 행태를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지나치게 치중하면 당초 목적은 사라지거나 훼손돼 형식과 포장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일을 해도 급하게 하게 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하는 욕속부달(慾速不達)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지역산업정책의 기획, 실행, 검증에 대한 프로세스를 보다 장기적·종합적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뜸을 들여 속속들이 잘 익히는 것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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