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Never Trust Anyone' <아무도 믿지마라>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존재니까.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하루 평균 무려 200번, 또는 10분의 대화에서 대략 2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거짓말을 해도 일반사람들이야 멋쩍게 웃어넘기고 대충 얼버무리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늘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유력 정치인이라면 얘긴 다르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에겐 치명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순진한 착각이었다고 실감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주 첫 출근했다. 그는 총리인준 과정에서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민낯이 다 드러났다. 청문회 문턱도 못넘은 세명의 국무총리 후보에 비해 그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자신할 순 없을 것이다.

병역기피의혹, 부동산투기, 박사학위 논문표절, 황제특강, 언론협박 등이 시리즈로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기자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뻔히 보이는 거짓말과 변명할 때였다. 청문회장에선 사상초유로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식도 부정한 고위공직자도 있었다. 혼외자식을 두고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민 전 검찰총장 말이다. '자식을 자식이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전'의 현대버전이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특별검사, 검찰총장이 서로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화제의 드라마 '펀치'는 사회지도층의 위선을 무섭도록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장면 곳곳에 무릎을 치게 하는 현실이 담겨있다.

거짓과 위선은 정치인에겐 필요악인듯 하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속성 때문이다. '제 논에 물대기'처럼 사람들은 자기합리화와 자기정당화에 쉽게 빠진다.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과 캐럴 태브리스는 자기정당화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마음속에서 양립할 수 없는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키면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맞추어 마음을 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기정당화'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자신이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옳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한다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힘들 것이다.

이 총리는 내정이후 한때 '자판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의혹'을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해명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충역 복무에 대한 의혹 제기에 50년 전 찍은 자신의 엑스레이 사진을 공개할 정도였다. 사회의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총리를 꿈꿔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준비된 총리후보가 정작 준비못한 것은 의혹을 해명할 기본자료가 아니라 공인으로서 기본자세였다.

여론은 싸늘했지만 이 총리는 기어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그가 어떻게해서 국무총리가 됐느냐는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호남총리론'에 반발한 충청권 민심이 한몫했다. 인사청문회 이전까지 충청지역의 이완구 총리인준 찬성여론이 33.2%였다가 인사청문회 하루만에 66.1%로 민심이 돌변했다. 충청권에선 새정연을 겨냥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두고보자며 벼르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다. 언론에선 '지역주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총리는 고향 충청도민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는 그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렇다고 지역 프레임에 갇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정현 의원처럼 충청권에 예산폭탄 투하를 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긴 역대 '충청총리'가 지역에 기여한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입신을 위한 '들러리 총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기로에 섰다. 지지도 20%대로 거의 바닥 수준이다. 전통적 지지기반이 무색하다. 체감경제가 심각하다보니 민심이반이 만만치않은 것이다. 더구나 집권 3년차다. 힘이 빠진 정권이 산적한 국가적인 현안과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긴 어렵다.

이 총리는 '반전카드'다. 물론 너무 많은 흠결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가 하기에 달렸다. 사람들은 그의 도덕성보다 능력에 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만큼 국가적인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총리엔 호남총리, 충청총리 따로 없다. 유능한 총리와 무능한 총리만 있을뿐이다. 그 빚은 충청도민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갚아야 한다. 총리직은 정치인 이완구의 진정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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