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선의가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듯 악의도 항상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사건이 발생한지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그렇다.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우리마당 통일문화연구소 소장)이 사건 이후 전개된 상황을 알았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에게 뒤늦게 윤리의식이 발동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테러이후 그가 의도하지 못한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김기종 피습은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우선 국민들에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시켰다. 피해당사자인 리퍼트 대사는 지난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면서 "우리의 목적과 결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적 파트너십뿐 아니라 역동적 경제관계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온뒤에 땅이 굳어진다"며 "같이 갑시다"라고 한국말로 마무리했다.

혹시라도 종북좌파들이 손자병법의 시계편에 나오는 '일이노지 친이이지'(佚而勞之 親而離之·적이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힘들게 하고 적이 친하면 이간시킨다) 전략으로 한미동맹에 균열을 노리고 "크게 한건 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미국 정부도 이번 일을 '돌출적인 개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사건으로 평가절하한 것이다. 외국에서 볼 때는 '코리아 리스크'를 떠올릴 사안이긴 하지만 한미동맹이 얼마나 끈끈하게 맺어졌는지 재확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과격한 종북주의자가 칼 들고 설치는 모습에 충격받은 보수층도 결집됐다. 김기종은 간첩 왕재산과 방북한 적이 있고 "김일성이 20세기 민족지도자"라며 남한엔 비교할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기종보다 그의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는 더 극단적인 종북성향을 드러낸 인물이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황상현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위원장은 젊은 대장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혈기로 기세좋게 한반도 영구평화와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의 길을 가도록 이 엄중한 시기에 죽음의 길을 간 것이다"라고 다음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내용도 불온하지만 대한민국 변호사의 북한식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황선의 남편 윤기진은 미 대사 피습 사건에 대해 '얼굴에 상처 조금 난 걸로 온 나라가 난리'라는 막말을 SNS에 올렸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테러까지 자행하는 것을 바라보는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불편한 정도를 넘어 불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추락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다시 부상한 것은 이같은 국민정서를 보여준다. 어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열흘전에 비해 7%p 반등한 42.3.%를 기록했다. 인사실정과 불통이미지, 서민경제악화로 지지도가 추락해 레임덕을 걱정했던 박 대통령으로선 예상못한 긍정변화다. 정국운영에 탄력을 받을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또 미국과 미국대사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박 대통령을 비롯 국무총리와 부총리, 여야 당대표, 정부의 고위인사들이 줄줄이 병실을 찾아가 병문안을 갔다. 보수단체는 사죄 퍼포먼스나 치료비 성금 모금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외국인들에 어떻게 비춰질지 의문이다. 썩 '좋은 그림'은 아니다. 한미 유대는 매우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친미편향적인 분위기 조성은 외려 역효과를 불 수도 있다.

다만 피습사건 당시의 충격파에 비해 차분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지만 제2의 김기종 같은 인물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 개량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채 궤변을 늘어놓는 김기종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광신적인 몽상가를 보는 듯하다. 이런 인물은 위험하긴 하지만 테러리스트 라면 웬지 어설퍼 보인다. 소설가 서해성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그의 칼끝은 자신의 일그러진 맹종에서 뻗어나왔다. 맹종은 언제나 의로움이라는 착각을 당의로 덧씌우기에 위험하다. 맹종과 망상은 자신을 왜곡되게 신념화해서 스스로를 식민지로 삼을 뿐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은 종북의 숙주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우리 주변의 이런 얼치기 맹목적인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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