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운동장이 없어서 교내 주차장에서 농구하고 조립식 건물인 급식소는 비만 오면 줄줄샌다. 음악과 연습실은 방음이 안되고 반지하인 미술실은 환기시설도 없어 곰팡이꽃이 활짝 핀 학교가 있다.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불우청소년들을 위해 대학생들이 자원봉사했던 70년대 무허가 야간학교가 아니다.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는 우리의 교육현장에 이런 학교도 있다.

'따뜻한 품성과 창의력을 겸비한 세계적 예술인 육성'이 교육목표인 충북예술고 얘기다. 이시종 충북도지사와 김병우 충북도교육감, 이승훈 청주시장은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위해 무상급식 확대와 친환경무상급식등 무상복지를 공약으로 주창했지만 전시성 행정이라는 혐의가 짙다.

수년간 시설이 낡고 엉망인 곳에서 공부하고 실기연습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헤아려봤는지 의문스럽다. 학교시설 개선보다는 무상급식이 더 유리한 정책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무상급식예산 때문에 학교시설 개선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

충북예술고의 환경을 보도한 내용을 보면 정말 이럴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소음이 심해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술실은 온종일 전등을 켜놔도 어두웠다고 한다. 공연장은 현악기 연주자가 동작을 줄여야 할만큼 비좁아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불가능했고 전국 공립예술고중 유일하게 기숙사가 없어 충주, 제천 등 통학거리가 먼 학생들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해야 했다. 한 학부모가 16년 전에 사비를 털어 건립한 급식소는 천장의 방수기능이 떨어져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물받이용 양동이를 가져다 놓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올 졸업생 103명 중 91명이 대학에 진학(88%)했고, 서울권 대학 진학률은 49%였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학부모들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교육청은 학교를 이전해주겠다고 약속한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개선이 이뤄질 리 없었다. 극도로 열악한 시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학부모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충북예술고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시·군 교육장들 사이엔 낙후된 학교시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수업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학교에 개보수할 곳이 많지만 무상급식 예산에 밀려 손을 못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은 그저 꿈일뿐이다.

김병우 교육감은 지난해 취임하면서 '행복교육TF팀'까지 만들어 12대 영역, 68개 추진과제, 204개 추진목표로 재구성한 공약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충북교육의 비전을 하나하나 이루기 위해 시험점수'를 이기는 행복한 공부,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을 통한 공교육 내실화, 안전하고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참여·소통·협력의 교육공동체 실현 등을 제시했다.

옳은 말이지만 '거창한 공약' 대신 시설이 열악한 학교현장을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고 교사·학생·학부모와 대화를 나눈뒤 빠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공감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렇듯한 공약이 제시돼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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