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꽃향기 가득하다. '벚꽃엔딩'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고,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았어도 꽃길 따라, 꽃향기를 맡으며 꽃놀이 사랑놀이 한창이다. 근심과 걱정을 떠나보내는 치유의 아이템으로 남도여행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생명을 보며, 만화방창 꽃들의 낙원을 보며 내 마음 속에 분홍빛 향기를 심는다.

손에 잡힐 듯 뺨을 스칠 듯 부드러운 봄햇살과 바람에 흩날리는 연약한 잎새가 내 어깨를 스쳐간다. 자신의 무게보다 수십 배나 무거운 흙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꽃대를 보며 느림의 미학을 생각한다. 꽃들은 자신들이 언제 피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직 인간만이 욕망과 근심과 미련으로 가득하다. 봄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네며 잠시 지친 몸을 뉘게 한다. 그래서 어떤 건강보다 확실한 마음의 보험이 여행이라고 했던가.

2015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행사가 끝나자마자 남도 여행길에 나섰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짧은 시간에 3개 도시의 행사를 치르면서 생긴 고단함을 내려놓고 싶었고, 때마침 청주시의회에서 전라도의 문화공간 견학에 함께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진지한 고민과 탐구와 열정의 의회가 될 것 같아 그 길을 함께한 것이다.

꽃길 따라, 문화의 길 따라 나선 남도기행은 완주 삼례예술촌, 전주 소리의전당·한옥마을,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 등이다. 삼례예술촌은 6개의 농협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이 일대의 곡물을 약탈해 가기 위해 만든 창고건물인데 해방 이후에는 농협에서 사용해 오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기능이 다하면서 방치됐던 곳이다.

3년 전, 완주군에서 이곳의 아픔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적 재생을 통해 새로운 문화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목공예공방, 활자공방, 책박물관, 미디어갤러리, 아트카페 등을 유치했다. 건물의 역사성을 살리되 문화콘텐츠로 특성화한 것이다. 청주에는 이보다 더 크고 잘 보존돼 있는 담배공장이 있는데 역사박물관 하나 없고, 십수년째 방치하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간은 역사를 낳고 문화를 낳으며 사랑을 낳는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도 망설이고 있으니 참으로 난망하다.

전주 소리의전당은 크고 작은 극장, 전시관, 국제회의장, 야외공연장 등이 한 곳에 모여있는 문화예술타운이다. 이곳에서 연간 400여 회가 넘는 공연이 이어지고 세계적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인근에는 아태무형문화유산의전당이 700억원 사업비로 조성되었다. 아시아 태평양의 무형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공연과 학술과 교류와 전승이 이어지는 곳을 꿈꾸고 있는데 지켜봐야 할 일이다. 전주의 자랑거리는 한옥마을이 아닐까.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700여 채의 한옥과 골목길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먹거리 볼거리 추억거리 살거리로 가득하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달달한 1박을 한 뒤 광주로 달려갔다. 가는 길마다 벚꽃천지고 꽃향기가 흩날린다. 중외공원은 빛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 비엔날레와 예향의 도시를 누릴 수 있는 비엔날레관과 시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100년 간의 따뜻한 이야기가 흐르는 양림동, 채소부터 예술작품까지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대인예술시장, 동양화의 대가 의재미술관, 그리고 5·18민주화의 아픔을 보듬고 새롭게 태어난 아시아문화의전당…. 아픔이 있는 도시이기에 광주의 예술은 더욱 진실하다. 망각은 치유가 아니다. 아픔의 마디와 마디를 문화로, 예술로 기억하게 하니 이 도시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처럼 남도기행은 내게 낡고 때묻은 건물, 상처난 골목길,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새 순 돋고 꽃이 피며 아름다운 돋음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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