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늦은밤 모 방송국 문화현장 프로그램에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은 몇 번이나 '버려진' 이란 말을 썼다.

버려진 담(사실 담이란 말도 맞지는 않다. 벽이지 않은가)에 멋진 기획을 할 모양이긴 하지만 '버려진'이란 말은 거슬렸다.

더는 담배를 만들어내지 않는 공장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엔날레가 열리고 여러가지 쓸모있게 골똘하게 고심 중인 곳이니 버려졌다는 말은 맞지 않다.

'버려진' 이란 말과 함께 '재생'이란 말이 단박에 떠올랐다.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의 제사공장(현 두산위브제니스 자리)과 아울러 한때 청주를 먹여 살렸던 담배공장이 새로운 변신을 해야 할 대목이기에 '재생'보다는 지속가능한 생산을 이어가는 다른 말이 와야 할 것 같다.

명품아울렛이니 중국 관광객들을 위한 면세점이 재생의 대안은 아니다.

길게 보고 모든 시민들을 위한 청주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

축구장에 물 채워 수영장을 만들자거나 야구장을 만들자는 생각처럼 돌 던지듯 말해서는 안 되는 곳임을 틀림없다.

어마어마한 담배 생산량을 자랑하던 개발시대의 상징이니 이제 지독한 냄새도 나지 않는 예술공장이자 문화발전소가 되어야 마땅하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버려진 곳이 아니라 잠시 생산을 멈추고 쉬고 있는 곳이기에 쓸모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생산적인 끝장토론과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오래전에 아이들과 읽었던 동화 가운데 '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곳'(게리 헐/새터)이란 책이 생각난다.

시민의 돈을 현명하게 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장이 더 이상 도서관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도서관을 없애겠다고 말했을 때 도서관에서 살던 산제비가 했던 말.

"이천 오백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가 한 말입니다. '우리가 동전을 잃어버린다 해도 가난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큰 도서관에 있는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될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도서관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산제비는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의 안내로 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곳이 어디인지 알았기에 죽어가면서도 그런 말을 남긴 것이다.

도서관이 담배공장으로, 담배공장이 예술공장, 생활문화공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생산에 들어가기 위해서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예술가들이 작업공간을 차지하고 마음껏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공예에 대한 모든 것들이 만들어지고 만방에 보여줄 수 있는 곳, 크고 작은 동아리들이 언제라도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에 미술관까지 곁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 담배공장 한켠에 담배박물관도 만들어 이곳을 거쳐간 노동자들의 땀과 애환을 기록해두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담배공장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청주의 명운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제발 돈도 안 되는 돈 걱정하면서 자본을 끌어들여 여럿을 죽이는 메머드급 쇼핑센터를 짓는다느니, 그도 아니 골치 아프니 폭파시켜버리자는 말을 던지지 말고 청주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세워야 한다.

문화를 만들고 누리고 즐기는 새로운 광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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