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조선시대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는 말 그대로 태교의 중요성을 경험을 통해 기술한 책이다. 뱃속의 열 달이 태어나서 10년보다 더 중요하다며 산모는 바른 생각, 바른 먹거리, 바른 행동을 통해 태어날 생명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조선의 베스트셀러인 '명심보감'은 천자문을 띤 아이들의 윤리지침서였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절제된 삶과 존경과 우애와 상부상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유럽에도 육아지침서가 있다. 루소의 '에밀'과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이다. 루소는 자연에 순응하는 교육, 선한 본성을 잃지 않게 하는 교육에 대해 따뜻한 가슴과 재치 있고 번득이는 발상으로 설파하고 있다. 경쟁과 인공적인 환경, 자본의 논리가 갖는 폐단이 무엇인지 에둘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거칠게 질주하는 경주마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자연성의 회복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테의 할아버지는 어린 괴테가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데 힘썼으며, 할머니는 유년시절 크리스마스 인형극을 집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손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갖도록 했다. 괴테는 '시와 진실'이라는 자서전에서 이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세종대왕이 "넓게 보고 깊이 파고들면 스스로 귀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서울 한 복판에 마을 공동체가 있다. 성미산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육아문제를 고민하면서부터 출발했다. 물질화, 문명화, 획일화 돼 있는 사회적 환경속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육아공동체, 생명공동체마을을 만든 것이다. 육아와 청소년 교육문제에서부터 바른 먹거리, 문화예술 활동, 마을 가꾸기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형 마을 공동체가 된 것이다.

경기도에 세살마을이 있다. 크리에이터 이어령의 제안으로 경원대학교 내에 만들어 진 세살마을은 태아와 예비엄마 교육과 새 생명이 태어나 지적능력이 거의 없는 세 살 시점까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태교음악회, 초청강연회 같은 이벤트에서부터 과학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 세살보듬이 사업, 부모와 조부모 세대간의 양육문화 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시골에서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청년들이 시골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고,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아이 낳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 출산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느 마을에서는 십 수년만에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며 잔치를 열고 신문에까지 보도되고, 정부에서는 출산장려를 위한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을까. 생명의 대를 이어가는 문화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회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청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명문화도시다. 아니, 동아시아를 대표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며, 세계를 대표하는 생명문화도시다. 소로리볍씨, 태교신기, 명심보감, 직지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싸움을 하지 않으며 군집생활을 하는 두꺼비 서식지를 시민의 힘으로 살려내지 않았던가.

크리에이터 이어령은 말한다. 청주는 절멸위기의 두꺼비 서식지를 시민운동으로 살려낸 도시며, 두꺼비와 사람이 공존하는 지구촌 유일의 생명도시라고. 이곳에 세살마을을 만들고, 생명의 가치를 확산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변주해야 한다고 응변한다. 이름하여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도시(아나기 도시)'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 낳지 않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아이 낳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는 더더욱 희망이 없다.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도시,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 나라가 온전히 존재하려는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고, 생명교육과 생명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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