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스토리 시즌2 중부매일·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 캠페인 이름없는 천사를 찾아 떠나는 나눔여행] 충북아너소사이어티 25호 권광택 환희개발 회장

오늘 여행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12월에 마무리한 '기부스토리 시즌1 나눔이 나눔을 부른다'로 잠시 떠나볼까 한다. '기부스토리 시즌2'의 성격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잠깐 외도(外道)를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 그럼 오늘 여행을 떠나보자!

거짓말 조금 보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의 남성이 당찬 걸음으로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문을 들어섰다.

약속 시각은 오후 4시. '시간을 볼 때 저 사람이 맞을 것 같은데….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는 올해 60세, 이 사람은 아니겠지'란 생각에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 모금회 직원이 불쑥 나와 "회장님! 어서 오세요"라며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나에게 오늘 함께 여행을 떠날 권광택(60) 환희개발 회장을 소개했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충북의 25번째 회원인 권광택 회장과의 첫 만남은 그랬다.

한 해가 더 지나면 환갑이라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의 젊은 모습과 다부진 발걸음, 요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상남자 중의 상남자'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자리. '상남자'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부끄러운 듯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코 나 참! 뭐 이런 것을 다하고 그래요. 별로 할 말도 없고 말도 잘못하는데"라며 그가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며 다소 긴장한 듯 말을 건넸다.

인터뷰라 생각 마시고 아들 친구랑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그냥 솔직하게 살아오신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란 말로 그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러자 그가 농담인 듯 "솔직하게 말하라니 더 긴장되네요"라며 환한 미소로 그동안 그가 힘차게 살아온 삶의 여정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의 고향은 옛 청원의 옥산이다. 집은 가난했다. 그 시절 가난했던 집이 어디 그의 집뿐일까. 모두가 어려웠고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의 집은 한 끼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몹시 가난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했고 그 뒤부터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어야 했다.

'고향이 이곳(청주)이면 여기서 모두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하셔겠네요?'라고 한 나의 질문에 그가 대답을 잠시 망설였던 이유다.

"초등학교만 나오고 모두 독학(검정고시)으로 중·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긴 했어도 대학교까지 나왔습니다"라며 그가 굴곡졌던 그 삶의 여정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일이든 해야 먹고 살 수 있었어요. 막노동은 기본이고 일이란 일은 무조건 다 했어요."

돈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는 일이면 막노동에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것이 한(恨)이었다.

온갖 일로 지칠 대로 지쳐 무거워진 몸으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늦은 밤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 덕에 그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칠 수 있었고, 드디어 2000년 '00학번'으로 자신의 큰 딸(35)과 나란히 대학에 입학해 못다 배운 한(恨)을 풀 수 있었다.

"제 좌우명이 '개과불린(改過不吝)'인데 '허물을 고침에 인색(吝嗇)하지 않음'을 뜻하고 풀이하면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네요. 지금까지 배움의 미련이 제게는 허물과도 같았나 봐요"라며 그가 계면쩍은 듯 이야기했다.

가난하지 않으려고, 먹고 살기 위해 그것이 성공이라 생각한 그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한다. 낮에는 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그렇게 쉴 틈 없이 살아왔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그를 이제는 레미콘과 아스콘을 취급하는 업체의 회장으로 어엿하게 자리 잡게 했다. 그래서 그의 삶을 주경야독(晝耕夜讀) 또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앞만 보며 성공을 위해 달려온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8년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는 물론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고, 그가 앞만 보며 달려온 삶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의 수술이 잘 돼 지금은 작은 시골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건강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내에게 큰 일이 있고 나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니 챙겨야 할 것이 아주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눔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옥산에 있는 '옥산복지회'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고, '충북인재양성재단'에도 1억원을 쾌척했다. 소소한 나눔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애착을 두고 신경을 쓰는 것이 '충북인재양성재단'이다. 그가 배우지 못했던 설움을 겪은 터라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사회가 건강해 지려면 인재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편이 어렵고 돈이 없어 배움을 중도에 포기하는 인재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요.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모든 일에 악착같았고, 배우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으며 앞만 보고 살았던 그가 이제는 주변과 이웃과 나누는 삶은 꿈꾸고 있다. 그런 그의 꿈이 몽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기를 힘차게 응원한다. / 엄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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