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경기도 가평 축령산 잣향기 푸른숲길

숲속을 걷다보면 특유의 향이 있는 곳이 있다. 소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송림길엔 산뜻한 송진내음이 은은하게 풍긴다. 키큰 갈대가 무성한 경남 창녕 우포늪은 습지에서 올라오는 옅은 거름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경기도 가평의 축령산(879m) 숲속은 상큼 고소한 잣향기가 머리를 맑게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심은 광활한 잣나무 유림지에서 풍겨나오는 것이다. 잣내음 뿐만 아니라 눈도 시원하게 하는 숲속이다. 하늘높이 20m를 넘는 꼿꼿한 나무가 열을 지어 빽빽히 서있는 모습은 이채롭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 경계에 있는 축령산은 80여 년 전 심은 잣나무가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잣나무림으로는 국대최대 규모다. 잣 생산에 알맞은 기후 덕분에 깊은 향과 맛을 내는 '가평잣'을 생산하는 원산지이기도 하다. 가평군은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 해발 450m~600m 고지대에 '잣향기 푸른숲길'이라는 이름으로 풀향기길, 새소리길, 피톤치드길, 꽃향기길, 화전민마을길, 야생화길등 다양한 숲체험 코스를 만들었다. 각 코스는 짧지만 작정하고 모든코스를 걸으려면 만만치않은 길이다.

폭넓게 돌으려면 체험코스를 버리고 긴 순환임도를 택해야 한다. 잣생산품과 잣음식이 전시된 축령백림관앞에서 가볍게 몸을 푼뒤 출발했다. 야생화단지를 거쳐 가장 먼저 만난 피톤치드길을 걸었다. 전날 내린비로 촉촉해진 흙길의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피톤치드는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휘발성 물질이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와 우울증에 효능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개월간 산림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울증 환자 9명의 HRSD(우울증 척도)가 평균 13점에서 5점으로 낮아지는 회복을 보였다고 한다. 잣나무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를 맡으며 걷으면 우울증은 몰라도 괜시리 마음은 편안해 지는 기분이다.

가파른 피톤치드길을 빠져나와 순환임도로 접어들었다. 정규코스를 벗어나니 그 많던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넓고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숲속에서 후닥닥 뛰어올라가는 다람쥐가 간간히 보였다. 드물게 까막딱다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과 맞닿을 듯 쭉 뻗은 굵은 잣나무가 늠름한 위용을 뽐낸다. 길을 걷던 동반자가 "이처럼 굵고 높은 잣나무는 태어나서 처음본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오르막 임도는 완만했으나 그것도 산길이라고 적당히 힘들었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숲속에서 불어왔다. 봄볕은 부드러웠으나 그늘은 선선했다.

순환임도를 한바퀴 돌다보니 어느새 축령산 9부능선이었다. 눈앞에 물가두기 사방댐이 보였다. 유사시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취수원으로 조성됐으나 지금은 풍욕장과 등산객들의 쉼터로 애용되고 있는듯 했다. 쉼터의 테크에서 목을 축이고 두갈래 길에서 잠시 망서렸다. 멀리 서리산방향의 순환임도로 갈것인가 아니면 출발지점인 백림관으로 직접 내려가는 화전민 마을길로 내려갈것인가. 결론은 우회하는 길이었다. 길가에 40세 전후의 여자 셋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편안하게 누워서 산림욕을 즐기고 있었다. 도심에서 지친 몸에 숲의 활기를 불어넣는듯 했다. 이길엔 야생화도 눈에 띠었다. 금낭화, 노루귀, 복수초, 금강제비꽃이 바위밑이나 나무뿌리틈 사이에서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다. 철쭉도 보였으나 시기가 일러서인지 꽃은 멍울속에 감추고 있었다.

축령산 자락엔 18ha에 걸쳐 조성된 잣나무숲이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 숲 곳곳에 어린 묘목이 자라고 있다. 높이 1.5m 정도의 작은 잣나무는 높이 20m의 어른 잣나무를 부지런히 쫓아가며 열매까지 맺어내고 있었다. 80여 년 세월 동안 축령산을 지킨 잣나무는 이렇게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산림연구소는 그 숲속에 잣향기 목공방, 화전민 마을, 힐링센터등을 조성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날 잣나무 숲속을 8km 헤멨다. 결코 짧지않은 길이지만 웬지 긴 산책을 다녀온듯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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