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교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만약 충북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교내 영어경시대회에 응시기회를 잡지못해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것은 물론 결국 작가의 꿈도 접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누구나 차별없이 공평하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 교육평등이 실현된다. 하지만 충북교육계에서는 최근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해 많은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최근 일부 고교가 교내 경시대회의 응시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아예 응시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연히 형평성 논란이 일어났다.

청주 시내 모 고교는 교내 영어경시대회를 열면서 성적순으로 1학년 20명, 2학년 20명을 선정, 이들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응시 기회를 줬다. 이 영어 경시대회는 영어 읽기, 말하기, 쓰기로 진행됐다. 모든 학생들이 영어경시대회 참가를 원한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도 아니고 학교에서 성적을 기준으로 응시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교육평등이라는 가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더구나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성적순으로 시험기회를 주겠다는 교육자의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학교 측의 해명이다. 보도에 따르면 학교측은 "반기문 영어 경시대회가 올해부터 '반기문 글로벌 리더십 캠프'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인성과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다 학사 일정 운영상 불가피하게 응시 자격을 제한했다"고 해명했다.

공부를 못하면 인성과 잠재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들린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당연히 인성과 잠재력도 성적순이 아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교육자가 있는 학교에서 훌륭한 학생이 배출되긴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김병우 교육감은 '능력 있는 사람을 기르자'는 보수적 교육관과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자'는 진보적 교육관을 융합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현장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성적위주로 시험기회를 주는 편향적인 교육방식으로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되기 어렵다. 성공한 사람 중에 의외로 열등생이 많은 것은 역사책에도 나와있다. 발명왕 에디슨도,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세기의 정치인 처칠도 학교를 다닐 때는 평균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영어점수가 낙제점이었던 다니엘 페나크가 학교를 졸업할때쯤 영어실력이 최고수준이 되고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는 인기작가로 성장한 것은 부모와 교사의 따뜻한 격려와 영국인 친구와의 영어펜팔때문이었다.

성적이 미흡하다고 해서 영어경시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막는것은 학생들에게 패배의식과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영원히 열등생으로 남아있으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이런 인식이 대학서열화와 수능으로 비롯된 서열주의식, 그리고 결과중심 교육 이라는 폐해를 낳게 되는 것이다. 기회균등과 교육평등이라는 가치를 떠나 학생들에게 동기부여와 자신감을 심어주기위해서라도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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