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그날 저녁은 참으로 오랜만의 여유를 얻었다. 동아시아문화주간 전시 개막, 교류공연, 시민동아리경연대회, 유모차퍼레이드, 지방공항포럼, 문자학술회의 등 숨 막힐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잊고 있었다. 하루하루의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하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새벽을 열고 늦은 밤 찬바람이 어깨를 스치는 아픔을 품고 귀가하곤 했다.

그날 저녁도 내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밀려오는 피로감과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따금 탈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날의 행사는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했으며, 감동의 무대였다. 바이올린 신동 장유진의 공연 말이다.

청주아트홀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을 비롯해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주 출신의 바이올린 신동이라는 소문 때문에 온 것인지, 주위사람들의 등살에 밀려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장양은 미국, 일본, 서울, 청주로 이어지는 빡빡한 공연 스케줄로 심신이 지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쓰러운 생각이 밀려왔다.

공연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작고 여린 모습의 장 양이 무대에 섰다. 요한 폴 폰 베스트호프, 로베르트 슈만, 알프레트 슈니케, 장 시벨리우스, 존 코릴리아노 등 세계 거장의 곡들을 100분 동안 독주했다. 우리에게 결코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지만 나는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숨가쁜 감동을 맛보았다.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세포가 일제히 요동치고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바이올린의 선율은 파도처럼, 햇살처럼, 바람처럼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때로는 질풍노도와 같은 격정도 있었고, 아침이슬 같은 고요함과 풀잎같은 향기가 끼쳐오기도 했다. 게다가 순간 순간마다 그녀는 천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음악적 사유를 표정으로 말하는 100분은 모두가 극적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삶의 향기를 얻었다. 일의 무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했으며, 평화와 행복에 젖게 했다. 문화의 바다, 예술의 숲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게 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그 자리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장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바이올린 신동으로 알려지면서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했다. 그때 연주한 것이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었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이어령 명예위원장은 자택에서 열린음악회를 시청하다 소녀의 연주솜씨에 깜짝 놀랐다. 만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이어령은 여기 저기 수소문 끝에 서울에서 장 양 가족을 만났다. 장 양의 부모에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무대와 객석을 넘나드는 선율에 예술의 심미성까지 갖고 있으니 잘 키우면 좋겠다"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바이올린을 후원하고 싶다고 했다.

장 양의 가족은 깜짝 놀랐다. 그저 딸이 열심히 바이올린을 즐기고 다른 또래들보다 잘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뒷바라지를 하지 못했지만 당신의 제안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울에서 제대로 배우고, 유학을 가면 더 좋겠다고 했지만 부모는 "어떻게 청주를 떠나 살겠느냐"며 청주에서 아이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령은 "참 좋은 부모를 만났구나. 청주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라며 그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문학전집을 한 보따리 내려 보냈다.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녀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고향인 청주에서 보은의 공연을 했다. 후배들을 위한 특강과 공연 모두 재능기부로 진행하였으니 이름하여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다. 청주 출신의 문화예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드라마작가 김수현은 얼마 전에 고향 청주에 드라마창작센터를 만들어 남은 여행 후학양성과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설치미술가 강익중, 한글디자이너 안상수, 베이스 연광철…. 고향과 함께하는 홈커밍데이가 청주의 새로운 정신이자 문화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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