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올해도 문화의집과 사직1동 주민들과 주민센터가 함께하는 골목사업이 시작되었다. 2년 동안은 꼬박 주민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구술자료집에 공을 들였고, 올해는 가칭 사직1동 닷컴(흥미로운 지역 주제와 사람들 이야기를 가지고 다달이 펴내는 전라도닷컴에서 따옴)이라는 이름으로 동네사용설명서를 만들기로 했다. 편집위원들은 주민들이다. 재개발이 되느냐 마느냐로 어수선하고 그만큼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 주민들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흥미롭게 모을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주민들의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직1동 닷컴 같은 형태의 책자로 마무리해보기로 했다.

첫날은 주민 사정을 잘 알고 주민들의 발이 되어 뛰어다니시는 통장님들이 모이신 자리에서 설명회 겸 워크숍을 열었다. 통장님들이 사직1동 닷컴의 편집위원이 되어 현장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골목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큰 꼭지는 '동동 동洞 대문을 열어라'는 장으로 집집마다 수호신 노릇을 했던 사자 문고리를 찾아서 가까운 초등학교 아이들과 그림으로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갖가지 사자의 표정을 주제로 재미있는 글로 꾸며보기로 했다.

아울러 구술자료집에 나오는 골목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골목지도를 완성하여 보여주고 지지난 해에 했던 골목 작은 박물관전처럼 생활사가 그대로 담긴 물품들에 대한 애환과 이야기를 담고, 사직1동을 십자대로로 나누는 길마다 있는 전집, 구제옷집, 이발소, 미용실, 천사마트, 퀵서비스, 오토바이 수리센터, 철물점, 짬뽕집 들의 이야기를 편집위원들이 찾아가 소개하고 광고하고 내력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동안 펴냈던 두 권의 구술자료집에 대한 아쉬움과 자랑도 곁들여 시작한 자리에서 벌써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 통에 사는 어느 젊은 아주머니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 사는데 날마다 골목을 쓸고 있어서 제가 알리고 싶어요. 그 사람들이야 상 받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니 괜히 말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함께 나눠야죠", "우리 통에도 날마다 검은 비닐 봉다리를 허리에 차고 담배꽁초, 쓰레기를 줍는 아저씨가 있잖아","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이 아끼시던 물건들은 어쩌고요,","애 아버지가 결혼하자마자 월남전에 다녀왔는데 그때 보낸 편지를 찾아보면 어디 있을껴. 아마 사진도 있을 걸.",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궤짝이 아직도 있는데 이참에 내놓아야겠네. 동네 박물관 세우면 거기에 놓으면 되겠네.""그렇지, 그 통장님이 나물박사에 못 하는 요리가 없지. 그러니까 그 이야기도 들어가고.","내 살아온 이야기도 되나? 사직1동 이야기니까 안 될까?",

당연히 되고말고요. 이렇게 나온 이야기들만 가지고도 훌륭하지요. 이렇게 아이들을 키워냈다는 광고도 괜찮습니다. 퀵서비스로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동네 총각 이야기나 하얀 짬뽕을 줄까, 빨간 짬뽕을 줄까, 하는 짬뽕집 이야기도 언제든지 찾아주시면 달려가지요. 그렇게 만들어 가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직1동 닷컴이니까요.

이렇게 동네사용설명서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11월까지 수요일마다 골목을 쏘다니며 만들어낼 사직1동 닷컴이 그토록 주민들이 바라는 자랑거리가 되고 다른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날을 손꼽아 본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휩쓸고 갈 바람이 어떨지 걱정은 되지만 아무쪼록 서로 밥 먹으러 부르고 좋은 것 생기면 나눌 줄 아는 주민들의 천성만큼이나 살기 좋은 동네사용설명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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