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마음이 움츠러든 탓일까. 대중가요 중에 '희한한 시대'란 노래를 듣는 순간 단박에 호기심이 일었다. 요즘 우리나라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이 노래 제목이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한 바이러스에 강바닥마저 흉하게 드러나게 하는 가뭄까지. 뒤숭숭하다고 생각은 했어도 시대를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던 차였다.

노래를 들어보니 요즘 젊은 세대들의 절규 같은 것이었다.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를 넘어 오포 세대를 운운하는 젊은 세대. 대중가요이지만 그들의 외침을 곰곰이 음미하며 공감했다. 마침 작사자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더 실감이 났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고 있는데, 열심히 벌어도 2년마다 이사하며 전세금 올려주기도 바빠 화가 나 만든 노래라고.

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서민의 목을 옥죄는 가장 큰 문제가 집 문제 아닌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삶들. 저금리를 틈타 급격히 늘고 있는 대출금도 대부분이 생계형이라는 자료를 보면 더 아득하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부채이기에. 금리가 오르면 또 어떻게 할지. 젊은이들이야 은행에서 대출이나 제대로 받을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가사를 더 들여다봤다. '마지막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19만원을 들고서 나는 어디로 갈까 울지마 달라질 건 없어 울지마 그냥 그림자처럼 살아가'. 읽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한참 꿈을 향해 역동적으로 살아야 할 젊은이들 아닌가. 기성세대에 답답해하고 기존 틀에 화를 내며 바꿔보자고 나서야 할 젊은이들 아닌가. 아니 그림자처럼 살자니. 그 반대로 살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역설적으로 그 반대로 살고 싶어 몸부림이라도 치는 가사인가. 젊은이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쓴 맛부터 보는구나. 다 기성세대 탓이니 자책하지 말라는 말이 목청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 탓이라고 말해서 위로가 되랴.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감히 조언하기 어렵다. 아직은 희망이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라고, 열심히 살아보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기성 세대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알량한 말 몇 마디로 해결이 되겠는가. 되지도 않을 희망가를 한가하게 읊을 수 있나.

그래도 먼저 사회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희망 말고 무엇이 있냐고 강변하고 싶은 건 왜일까. 반대로 포기를 쉽게 받아들여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건 왜일까. 스펙쌓기에 지쳤는데 사회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언저리를 방황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래도 희망밖에 길이 없다고 다시 말해본다. 각자의 삶은 소중하고 유일하니까.

다시 희한한 시대 노래 가사로 가보자. 노래 가사 중에 가장 슬픈 것은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이란 표현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사랑이다. 희망의 시대를 살고자 하는 이유도 사랑 때문이다.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이것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마저 내려놓아야 한다니.

우리는 분명 희한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런데 요즘 베스트셀러인 '미움받을 용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물물의 온도는 항상 18도라고. 그렇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도 이렇지 않을까. 이 시대를 희한한 시대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희망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희한한 시대가 희망의 시대가 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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