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맑은 고을'이란 뜻을 가진 淸州의 '고을'이란 한자 주(州)는 내천(川)자에 삼수(三水)가 더해져 있다. 이는 '고을'이란 단순한 시냇물만 흐르는 냇가가 아니라 많은 물들이 넓은 들과 밭들을 적시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여 마을을 이루어 살기에 충분하다는 의미가 있다.

무심천과 미호천을 중심으로 성장한 청주는 1970년대 치산치수 사업으로 건설되어 아름답고 맑은 자연 자원이 된 대청호가 자랑스러운 도시이다.

물이 맑은 이유는 사물의 형상을 비추기 때문일 것이다. 물은 밤에도 하늘의 달과 별들을 받아 비추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받아 반사하는 것이다. '맑음'과 같은 연관성이 있는 말은 '청렴'이다. 청렴과 관련한 고사에는 '가난한 정승 계란도 유골(鷄卵有骨)이다'라는 말이 있다. 공직자의 검소한 생활과 가난한 모습이 오히려 명예스럽던 시기가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그 '맑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어김없이 7월이다. 장마철도 시작 되었다. 지붕이 새어 빗물이 방으로 떨어지면 빗물 담을 그릇을 놓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공직자는 맑고 청렴함이 우선이다. 청주는 조선시대에 율곡(栗谷) '이이'선생이 청주목사를 지낸 고장이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사불삼거(四不三居)를 지키라 했다. 사불의 으뜸은 재임 중에 절대로 부업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땅과 집을 사두지 않으며, 집을 넓히지 않고 마지막으로 그 지방의 명물을 먹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삼거의 으뜸은 상전이나 명문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받을시 거절하고 부탁은 들어도 답례는 거절하며, 마지막으로는 경조사 때 부조를 절대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권위와 위치를 이용한 재물을 탐하는 것을 지칭해 탐관오리(貪官汚吏)라 한다. 명심에 명심을 거듭할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청주에 와서 사불의 마지막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청주는 흔히들 '느림과 여유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구석구석 다녀본 청주에는 유독 질그릇과 항아리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항아리 속에는 된장 간장 고추장을 비롯하여 각종 효소와 저림 식품들이 가득 찬 풍경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 또한 '맑음'이다. 생명의 도시 청주로 와서 일하는 특권을 즐기고 싶은 단한가지가 바로 지역 음식을 외부에 널리 알리고자 '맛 집 탐방'과 식탐을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정신을 물질보다도 중시해야하고 양심적인 직관에 의하여 진리를 이해하고, 자아의 소리와 진리를 깨달으며, 논리적인 모순을 관대히 보라'는 의식을 가진 철학자이다. 서양의 철학자도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청주에서 근무하는 동안 더욱 곤고한 '맑음의 정신'을 넓혀나가는 학습의 도량으로 삼고자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이 전무해 업무수행에서는 참으로 자유롭고 좋은 점이 많다 할 수 있으나, 반면에 필자를 격어보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외지에서 온 낯선 사람의 지휘에 의하여 연주되는 오케스트라로 느껴질 뿐이다.

연주는 하되 '음이 맞지 않는 음악은 공기의 진동'일 뿐일 것이다. 청주 시민들이 감동의 박수를 치는 진정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로 인정받는 감동적인 연주를 만들려면 관객의 참여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오늘날의 현실은 깨끗한 공직사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합치된 목소리요, 공직수행자들이 지켜야할 당연함이 내포된 직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지역에서 업무와 관련된 많은 유관업체들이 실력 하나만으로 경쟁하는 진정한 시선의 참여가 절실한 때이다.

'진정한 맑음'이 존재하는 청주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흐르는 물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빛과 어두움을 구별 할 줄 아는 민감한 양심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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