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소나기가 그리웠다.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나기만이 아니었다. 영혼을 깨우는 소리를, 무디어진 촉수를 되살리는 소리를, 도시의 각다분한 일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빗방울을 만나고 싶었다. 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계곡, 들녘이 오랜 가뭄에 불볕더위까지 더해져 끈적거렸다.

문득 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속살을 엿보고 도시의 풍경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무심천을 지나 성안길을 거쳐 서운동과 대성동 일원의 뒷골목을 거닐었다. 국립청주박물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뒤 상당산성에서 드넓게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만났다. 굳게 닫혔던 가슴이 활짝 열리더니 도시의 수많은 사연들이 내 안으로 밀려오는 듯했다.

2천년 청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무심천, 세월의 잔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중앙공원과 젊음의 거리 성안길, 낡고 허접하지만 삶의 열정을 쏟아온 골목길이 언뜻언뜻 보인다. 공단에서는 하얀 연기가 쉴 새 없이 구역질이며, 키 큰 빌딩숲의 마천루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질주하는 도로와 공항과 오송역, 옛 담배공장과 호텔과 학교도 저만치서 기웃거린다. 푸른 논과 밭과 숲이 도시의 풍경과 조화롭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과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사랑을 위해, 욕망을 위해, 생존을 위해 각자의 연장을 들고 있지 않던가. 누군가는 열정을 충전하기 위해 휴식이라는 점을 찍고 있을 것이다.

청주사람들은 정작 청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증이 발동했다. 청주사람들은 청주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니면 위선과 아집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도시를 만들면서 마치 애국자인양 핏대 세우는 사람은 없는가.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목이 말랐다. 어쩌면 나도 청주사람 운운하면서 나만의 꿈을 ㅤㅉㅗㅈ는 졸렬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머리칼이 올올이 곤두섰다.

지금 청주의 화두는 무엇일까. 통합시 출범에 따른 갈등과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상생과 발전이라는 큰 바다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단체의 통합을 마무리 했고 행정개편도 단행했으며 도시의 비전을 설계하고 있다.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청주의 문화가치를 세계로, 미래로 확산하는 일과 다채로운 문화예술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있는 것은 청주의 100년을 준비하는 모습이 왠지 아마추어리즘에 빠져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무엇이며, 청주의 미래식량은 무엇인지, 이것들을 아름다움으로 물결치고 알곡진 열매로 맺게 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허약하다. 1년 농사를 짓지 말고 100년 농사를 지어야 함에도 우리는 당장의 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공간의 가치를 찾고 공간 속에 청주정신을 담으며, 청주시민들의 열정과 사랑을 심어야 한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다. 청주사람이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뛰어놀며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발목 잡는 나쁜 습성부터 버리고 격려와 축하와 배려와 아낌없는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 청주만의 생태와 디자인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시를 점령한 간판과 현수막, 불법 주정차는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도시농업과 한뼘공원을 통해 생기발랄한 도시를 만들고, 마을별 나무이야기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와 생태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거점별로 청주만의 생명문화를 관광자원으로 육성하고, IT, BT, NT가 청주발전의 삼형제가 되어야 한다. 이미 오송바이오를 비롯해 모든 것이 준비돼 있지 않던가.

청주의 역사를 아카이브화 하며 융복합 창조콘텐츠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지혜와 열정 말이다. 그리고 청주 사람들은 24시간 문화로 행복해야 하고, 꿈속에서도 문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청주를 생각하면 번번이 목젖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세월이 건들마처럼 설렁설렁 지나가는 사이에 청주라는 도시가 도둑맞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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