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작가.참도깨비도서관 관장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충북 증평에서 괴산 모래재를 넘어갈 때마다 혼잣소리가 늘어난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도 뒷차의 경적을 피해갈 수 없기에 포기한지 오래라서 트럭이 다니는 3차선으로 밀려나며 내가 하는 혼잣소리는 다름 아닌 모래재 고개위에서 빨간 고추를 들고 서 있는 임꺽정 때문이다.

몇백 명은 족히 먹인다는 가마솥을 들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왜 저 자리에 임꺽정이 서 있게 되었는지, 과연 깊은 산속 산채에서 나와 자모산성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은 임꺽정이긴 한 건지, 소설 한 대목 한 대목을 떠올려보며 궁시렁거려 본다.

우리가 뭘 만들고 기념하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들은 그만한 까닭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가쁜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보더라도 쉬어가는 마음으로 기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고추를 앞세우고 있는 임꺽정에게는 그 모두가 빠져버린 그저 그런 괴산 청결 고추만을 알리는 '맹탕 정신'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 뿐이다.

생가가 있고 엄연한 걸작이 있고 홍명희 선생의 작가 정신을 기리는 문학제도 있건만 아직도 이념의 바리케이트 같은 것으로 막고 있는 호국의 임꺽정만이 있을 뿐이다.

궁시렁거림을 떠나 진짜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임꺽정 문학제'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괴산 지역 보훈단체 분들의 반대로 괴산에서 치르지 못하고 있는 '홍명희 문학제' 대신 숭고하게 작품만 가지고 기리겠다는 역발상과 대화 자체를 차단한 그들만의 문학제 때문인 것이다.

아직 실현은 되지 않았지만 괴산예총과 문인협회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니 곧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만 이렇게 작가를 배제하고 작품만을 기린다는 문학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괴산군민들이 빨간 고추를 앞세운 임꺽정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지만 마치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그동안 19회가 되도록 홍명희문학제란 이름으로 치러온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임꺽정문학상을 제정하여 우수한 문학작품을 뽑겠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오래 전 진통 끝에 제월대에 문학비를 세웠듯이 함께 고민하며 전쟁과 이념을 벗고 진정한 고전으로서의 임꺽정과 홍명희를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함에도 눈엣가시처럼 작가를 지운 채 임꺽정문학제 비슷한 것을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기념물을 만들어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 홍명희 선생이 빠진 임꺽정은 생각할 수가 없다, 지금 괴산을 중심으로 임꺽정문학제를 준비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괴산은 임꺽정을 낳은 작가 홍명희 선생의 고장이다. 전쟁과 이념 때문에 망명하기는 했어도 체코가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대표하고, 보성과 순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조정래 선생을 품었듯이 괴산이 홍명희를 품을 수는 없는 것일까.

파블로 네루다는 '점'이란 시에서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 만한 우주도 없다'고 말했다.

홍명희 선생과 임꺽정 사이에 겪는 이념의 대립은 우리가 함께 겪어야 했던 아픔이자 피다. 거리의 현수막에도 있지 않은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로 가자는 말이 그냥 손쉬운 말의 장벽만을 넘자는 것이 아니라면, 제발 홍명희만은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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