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지난 3월에 그리스 운명에 대해 칼럼을 쓰고 삼 개월이 지났다. 예상했던 대로 그리스의 운명은 쉽게 결론나지 않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침내 그리스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고, 치프라스(그리스 총리)가 원하는 '노(NO)' 대답을 얻어냈다. 당초에 박빙일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지만 그리스인들이 유로존 탈퇴에 대해 찬성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하여 치프라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리스인에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협상인 구제금융에 대한 문제는 더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문제에 대한 출발점에 대한 해석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등 채권국들은 그리스의 나태와 부정부패로 인해 빚이 늘었다는 입장이고, 그리스는 채권국들의 가혹한 긴축정책(Austerity)이 문제라는 것이다.

왜 필자가 먼 나라 그리스 문제에 대해 민감한가? 그리스 문제가 단순히 유럽에 국한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제가 잘못 되면 그 파장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애써 파장 최소화에 대해 언급하고 필자도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적으로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지만 그리스 사태로 인해 세계경제가 어려워진다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가 다시 한 번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미국이 쉽게 금리를 올릴 수도 없고, 세계 교역은 줄어들고, 불안 심리가 자리잡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 커져간다는 것이다. 불확실하면 경제활동은 위축된다.

위기는 스멀스멀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사람들은 위기가 근접하는 것을 느끼더라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IMF외환위기 때에도 태국에서 시작한 신흥국 환율위기가 몇 개월 전부터 진행되었지만,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들은 최악의 가능성을 단언하지 못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에도 사전에 여러 가지 징후와 경고음이 나왔지만, 최악의 사태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나서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맞추기는 어렵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악의 사태를 가정하고 대처하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기가 감지될 때에는 과도하게 소통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맨킨지가 우리나라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과도한 대응은 용서될 수 있어도, 초동 대응에 실패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는 것은 전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협상이 타결 되도 깊은 상처는 남을 전망이다. 채권국은 양보하기 싫었던 원금 삭감과 긴축정책 완화의 나쁜 선례가 남을 테고, 그리스는 여전히 과도한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재협상 시마다 무리수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적당한 시간 경과와 피나는 자구 노력이 문제 해결의 최선책이다.

그리스 문제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당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각종 금융변수를 면밀히 체크하고 대응해야 한다. 특히, 환율은 우리나라 경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최대 관심 변수다. 세계경제가 불안해지면 안전자산으로 수요가 몰리고, 신흥국들은 환율 불안과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 때문에 엉뚱하게 우리나라가 곤욕을 치른 것처럼, 금융에서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 당국의 역할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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