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이어령의 명저 '흙 속에 저 바람속에'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국인만의 서정과 사랑과 질곡진 삶이 모여 우리 고유의 문화원형을 만들었음을 알 것이다. 흙과 바람 속에 숨어있는 역사와 아픔을 담아 문학이 탄생하고, 노래와 흥이 이어지고, 창조의 물결과 불멸의 향기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조국은, 그리고 그 고향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좁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라고 했으며 망각의 여백, 그냥 묻어 두었던 풍경 속에서 젖어있던 울음을 건져야 한다고 외쳤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가 크나큰 상처처럼 열려 있다며 이러한 풍경이 한국의 DNA이며 창조의 밑거름이라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의 풍경을 찾아 나서는 방랑자요, 투어리스트를 자처했다. 각다분한 삶의 찌꺼기를 토해내고, 나만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며, 새로운 신세계를 꿈꿀 때마다 거리를 나섰고 산과 들과 도시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렸다. 서울 순성의 즐거움에서부터 제주도 올레길 풍광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맑고 향기로움을 품었다. 군산, 대구, 전주, 통영, 부산 등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그 속살을 훔쳐보기도 했다. 그리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삶과 문화와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골목길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외국을 가서도 골목길 순례를 놓치지 않았다. 골목길은 그 도시의 오래된 풍경이며, 엄연한 현실이다. 시리고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대에 뒤떨러진 곳일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쌓아온 시간의 퇴적층이기 때문에 바람이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에 젖는다. 파리와 런던의 골목길이 그러했고, 프랑크푸르트와 베니스의 골목길이 그러했다. 도쿄와 교토의 골목길에서도 진한 땀방울과 그들만의 대서사시를 읊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자. 내가 살던 고향이나 어렸을 적의 동네를 잃으면 어떤 추억으로 살아갈까. 공간에는 혼이 서려 있는데 가장 중요한 공간은 단연 집일 것이다. 그 집과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 사이를 오가는 길이 바로 골목이다. 골목에는 물길도 있을 것이고 담장과 공터와 느티나무와 커다란 먹바위도 있을 것이다. 담장너머 한옥의 처마가 보일 것이고, 오종종 예쁜 꽃들과 열매와 낙엽과 설경이 계절의 무상함을 이야기 할 것이다.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춤추고 노래할 것이며, 어른들은 오가며 정을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스팔트 도로에 서면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달리기 위해,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하고 싶은 조급증이 발동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골목길에 들어서면 자아의 세계로 돌아온다. 주변의 풍경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고, 느티나무 아래에 서서 가던 길 멈추고 무념무상을 즐기고 싶어한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엿보고 싶고 사진으로 담거나 수채화로 붓질을 하거나 한 편의 시로 그 감동을 남기고 싶어한다. 비록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의 심성은 아날로그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청주의 골목길을 예찬했다. 일신여고 주변의 6개 건물의 양관과 동산교회와 서운동성당 주변의 근대유산과 낡은 골목길 풍경, 육거리시장과 제일교회와 성안길 구석구석의 아픔을 간직한 이야기, 우리예능원과 동부배수지와 충북도청과 옛 도지사관사와 청주향교와 성공회성당의 숨겨진 비밀의 문, 그리고 대성학원과 청주대학교의 낡았지만 만학의 꿈을 빚는 공간이 오달지고 마뜩하게 남아있다.

이 길은 향기가 나는 길이다. 청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품고 있는 길이다. 낮고 느리지만 분명하고 경쾌하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런 삶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라. 길은 스스로 길이 되고 오가는 사람을 품으며 사랑이 되어 다시 길을 만들어 간다. 청주만의 골목길 하나 만들어 가고 싶다. 사람냄새 나고 풍경소리 가득한 가슴 떨리는 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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