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한국 사회는 소위 5대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 대기업의 경영권 싸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커질수록 인과관계의 속성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 사회적 심리이다. 이를 고려해보면 창업단계부터 성장까지 적나라한 기업의 역사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성장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보면 결국 정치권과 연결되었던 궤적까지 수면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기업의 성장 과정에 혀를 내두르게 되겠지만 곧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 변화 사이클이다.

이미 8년 전 소위 삼성특검이라는 사건에서 기업윤리의 한계성을 느꼈다. 50년 전 경제적 황무지에서 시작된 기업의 급속한 성장은 먹는 문제의 해결이 관건이었다. 따라서 기업 윤리를 따지기 어렵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치명적인 윤리 문제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는 변화된다. 그리고 인식도 변화된다.

이미 거대 기업이 된 일부 기업은 기업윤리의 문제점이 드러나도 매집으로 버텨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또 다른 기업들의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한두 가지의 법규 위반으로 망한 기업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법과 제도의 위반으로 인해 부과되는 과징금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의 소유권 집중, 불법경영승계, 분식회계, 정경유착, 환경오염, 생산 활동과 무관한 투기행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행위 등에 사회적 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지식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윤리 기준이 사회의 윤리 수준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리(倫理, ethics)의 어원을 문자대로 해석해보면 나뭇결처럼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순리 또는 사회적 풍습 또는 인간의 성품(ethos)에서 유래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윤리는 자연적인 것으로 가치 기준을 설정하는 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즉 사회가 투명하면 윤리 기준도 투명해지고, 사회가 혼탁하면 윤리 기준도 혼탁해지는 것이다. 과거에 수려한 강산(江山)을 지키는 것보다 공장을 짓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환경오염, 자연보호 등을 차후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과 같이 윤리적 가치 기준은 사회가 결정하는 동태적 규범이다.

따라서 최근에도 지속되는 우리 사회의 리더인 정치인의 불미스런 사건,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사회 현상 등은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에게만 도덕적 잣대를 높게 들이 대는 꼴이 될 수가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자숙하고 고민해봐야 하는 점이 없지 않다. 시쳇말로 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있다.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기업윤리는 기업자체가 행위로 보이는 목적적인 활동이 아니다. 기업 활동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기업의 정책, 기업 구성원의 행동 체계에 내재된 도덕성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윤리문제를 기업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구속력은 없다. 기업의 윤리는 기업행동에 관한 불문율이며 묵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성이다.

정부의 정책이 특별한 목적으로 가지고 국민 또ㅌ는 기업을 옥죄면 사회의 윤리 수준이 떨어지는 현상과 같다. 이는 매우 중요한 논리이다.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안보고 남의 눈 속의 티만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윤리, 도덕성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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