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비 오고 난 뒤의 거리는 거적대기 뒤집어쓰고 들어가는 불한증막이나 다름없다. 해는 연신 '불 나옵니다' 하고 외쳐대서 그늘 쪽으로 바짝 붙어 걸어도 찌는 듯한 열기는 피할 수 없다.

비 오기 전에는 바람이라도 불어서 살 만했는데 가뭄에 단비도 잠깐, 열섬이 되어버린 도시에서는 이러다가 텐트 치러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밤에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열대야이니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술집을 떠돌고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간신히 자보려고 하면 먹자골목에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회포를 푼다.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나 '거, 잠 좀 잡시다' 하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 술집에 전화해서 밖으로 나와 술 마시는 손님들 좀 조용히 시켜달라거나 가까운 경찰지구대에 신고를 하고 싶은 것도 꿀꺽 삼킨다.

몇 번이나 이사를 해야 한다고 대책회의를 해보지만 별반 소용이 없는 군소리일 뿐이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던 자정은 폐항의 말뚝과도 같을 뿐이다.

새벽 세 시고 네 시인데도 술 취한 사람들은 100와트 소리통이어서 냅다 물 한 바가지로도 뿌리고 싶다. 몇 데시벨로 올라가면 자동으로 물을 뿜는 장치를 설치해서 제발 저 입들 좀 조용히 시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제발 이 여름만 참자, 조금만 참자 하는데도 참을 수가 없다. 머리만 뉘이면 곯아 떨어지는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애꿎은 텔레비전을 다시 켜고 케이블방송을 보면 잠이 들까싶지만 몸만 피곤해질 따름이다. 텔레비전도 앓는 소리를 해가며 궁시렁거린다.

점점 더워져서 열대지방으로 변해간다는데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가 갱생 프로그램 비슷한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나무를 심는 일도 대안이 되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숲에도 숨통을 틔우는 일이 필요할 듯하다.

아침까지 꺼질 줄 모르는 대형간판들마저 달리는 차 같다. 열기와 빛을 품으며 잠들어야 하는 창문으로 맹렬히 존재를 과시하는.

밤새지 말고 잠다운 잠을 자야 모든 생명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래야 낮동안 활기차게 움직이고 번뜩이는 생각을 내놓고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을. 모든 에너지가 밤에만 집중되면 몸만 축내는 것이 아닐까. 낮동안 열심히 골목길을 돌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밤에 다시 귀를 잡고 이야기를 집어넣는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버텨보기로 한다. 저것도 어디로 품어내지 못한 도시 사람들의 에너지이겠지. 사랑 싸움이든 직장 울화든 낮동안 참 힘들었구나, 보고 싶었구나, 말하고 싶었던 소리통이구나 싶어 다시 한 번 눈이불만 덮고 잠을 청한다. 기어이 아침은 오고야 마는 일이니,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구를 만나지 하는 설렘으로 아침밥을 먹고 출근을 한다.

열섬 주민 여러분, 그래도 무슨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제각각 돌고 도는 에너지를 모아 열섬도 사람 사는 섬으로 만들 수 있는 대안을 보내주세요. 조금의 술과 차와 탁자를 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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