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소낙비가 내린 이후로 하늘은 높고 청산은 깊어만 갔다. 마을 사람들은 논농사 밭농사 한창이고 구릿빛 얼굴에는 스멀스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마을을 오가는 소달구지, 새참을 머리에 이고 논두렁 밭두렁 오가는 아낙네 등 모든 것이 오달지고 마뜩하다. 누렁이는 촐랑대고 시냇가 얼룩빼기 황소는 졸음에 겨운지 꾸벅꾸벅 세월만 낚는다. 노인들은 팽나무 아래에서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고 탕마당에서 소꿉놀이 하는 악동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귀뚜라미 처량하며 소슬한 바람으로 가득한 가을이 오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옥수수 잎사귀 와삭거리고 수수대궁 머리 숙이며 고추잠자리 코발트블루 하늘을 날던 초가을 어느 날 새벽, 단 잠을 깨우는 고동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세종대왕이 다시 초정리를 찾은 것이다. 병세가 악화된 탓도 있었지만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못다한 과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도 발걸음을 다시 돌린 이유가 될 것이다.

당시 세종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과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백성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는지 현장에서 직접 챙겼으며, 선조(先祖)를 경애하고 공경심을 온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고 있었다. 이와함께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 과학기술 서적을 출간하고 실용화를 위해 힘썼으며 효행록, 아악보, 세종실록악보, 삼강행실도 등의 예술 및 풍속서적을 백성들에게 보급했다. 특히 국민투표를 통해 조세법을 개정키로 하고 초정리 주변 마을에 시범 도입했는데 당신이 직접 그 결과를 확인했던 것이다.

초정에 옥(玉)이 발견되자 영의정 황희는 "태평성대의 징표"라며 기뻐했으며, 세종대왕은 중국 것이 아닌 조선 고유의 악기로 종묘의례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특별관리토록 했다. 세종실록에는 "초정리 옥은 실로 세상에 보기 드믄 보배이니 사사로이 채굴하지 못하게 하고 그 낭비와 금지를 엄하게 해야 하겠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영동 심천 출신의 박연을 불렀다. 일찍이 세종의 스승이기도 한 박연은 아악을 정리하고 수많은 악기를 제작하였으며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를 탄생시키는데 힘썼다. 궁중음악과 예법을 개혁하는 등 세종의 곁에서 음악과 학문을 장려했다. 그래서 세종은 박연의 공을 "그대는 내가 아니었다면 음악을 짓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그대가 아니었다면 역시 음악을 짓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둘과의 운명 같은 인연을 이야기했다.

세종은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다. 초정리 옥을 활용해 만든 편경으로 직접 시연토록 했고, 그 현장에서 음정이 정확치 않자 원인과 대안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의 그것과 다른 조선의 음악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보급하고자 힘썼다. 초정행궁 기간에 주변 마을의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고 여민락(與民樂)이라는 궁중음악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초정리 일대에 세종대왕 초정행궁이 조성된다. 세종대왕 초정 르네상스의 감동을 다시 만나고 세계적인 문화의 성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세계 3대 광천수인 초정약수와 연계한 한류콘텐츠를 특화하고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전략이다. 역사, 공연, 음식, 약수, 힐링 등으로 문화치유의 새로운 이정표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동군에서는 악성 박연의 성역화, 문화콘텐츠 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생가와 사당을 관리하고 난계국악박물관과 국악기제작촌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준 높은 군립국악단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한옥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대규모 국악체험관을 조성해 국악공연, 국악체험, 소리창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참에 충북도, 청주시, 영동군이 세종대왕과 악성박연의 운명같은 인연, 따뜻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하고 다큐,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로 특화하면 좋겠다. 창작 국악뮤지컬도 만들고 상설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융성 글로벌 아카데미를 추진하는 등 세계적인 문화자원으로 발전시키면 더욱 좋겠다. 지역과 민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세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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