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의 어부를 찾아서]<4> 보은 대청호 어부 정진섭씨

7월. 긴 가뭄 끝에 찾은 대청호 상황은 참담했다. 녹조에 뻘만 쌓이고 있는 호수, 만수위에서 20m나 물 빠진 호수에서 건져 올린 그물에는 외래어종인 블루길뿐이었다. 쏘가리와 뱀장어, 붕어와 잉어를 낚을 수 있을 것이란 취재팀의 기대는 오판이었다. 15년째 어부로 살고 있는 정진섭씨와 배에 올랐던 한여름의 이른 아침, 취재진이 마주한 것은 찌는 듯한 더위와 가뭄으로 산허리를 드러낸 호수,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녹조, 블루길 치어가 전부였다. / 편집자



15년째 고기를 잡고 있는 보은 회남의 정진섭(60)씨는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 충북도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충북 내수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몇번이나 인터뷰를 거절당한 후에야 고기잡이 배를 탈 수 있었다. 가뭄으로 만수위보다 20m나 내려간 호수, 녹조낀 그물에서 고기잡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취재를 하면서 깨닫게 됐다.

보은 회남면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서글서글한 말투와 넉넉한 외모로 취재진을 반겼다. 부친에게 어업권은 승계받은지 15년이 됐다고 했다. 보은 회남공동체는 모범공동체다. 회남면사무소 바로 아래에 있는 선착장에 소유가 다른 배들이 정박돼 있었다.

# 어부가 어부라고 말할 수 없는 까닭

회남면사무소 아래 선착장에는 11대의 배가 정박돼 있었다. 오랜 가뭄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물가에도 짙은 녹조가 가득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45세 되던 해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배에 오른지 15년이 됐지만 요즘은 어부라는 말을 꺼내놓는 것조차 서먹하다고 했다. 그만큼 고기잡기가 녹록지 않았다.

"70년대 어업은 신고제였죠. 대청댐이 담수되면서 고기를 잡았는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면 댐이 바로 생겨서 그런지 물반 고기반이었습니다. 고기잡이 배가 돛단배여서 지금보다 어구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고기는 정말 많았습니다."

시절 좋던 얘기는 과거형이었다. 정씨에 따르면 현재 대청댐은 외래어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가뭄 등의 환경 영향으로 고기를 잡아서는 먹고 살 수가 없는 구조였다. 정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회남공동체 회원들은 고기잡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겹벌이은 기본이라고 했다.

그의 거북선호를 타고 이른 아침 배에 올랐건만 녹조낀 그물에서 건져올린 것은 블루길이 전부였다. 보은지역 자율관리어업공동체 대표이기도 한 정씨는 "최근 가뭄이 심해 그물을 놓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현재 보은지역에서 어업활동을 하는 공동체 회원은 모두 32명. 이들 가운데 일정한 자리에 그물을 놓아 고기를 유인하는 이른바 정치망 허가를 받은 사람은 15명 정도다. 나머지는 자망과 주낙 허가를 받은 경우다.

정치망 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외래어종인 배스와 블루길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 토종어종을 잡는 일 못지않게 담수호의 생태계를 위해 외래어종 퇴치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지만 한 마디로 역부족이라는 것이 어업종사자들의 목소리다.

정진섭씨는 4~5월이나 장마철에나 고기 구경을 할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회남공동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상철(60)씨도 "외래어종이 토종어종을 다 잡어먹어 고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물을 놓으면 블루길만 잡힌다. 다른 고기는 보기도 힘들다"면서 "장마때나 고기를 좀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겨울과 쏘가리 산란기, 7~9월 가뭄과 녹조를 감안하면 실제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뭄이 심해지면 댐 수위가 낮아져 수온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정진섭씨는 토종어종을 잡아 얻는 수익보다 외래어종 퇴치에 나서면서 받는 구제사업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배스와 블루길 등 외래어종은 각 시군에서 1㎏을 3천200원에 매입하고 있는데 시·군마다 사업예산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진섭씨의 말이다.

"외래어종 100㎏ 잡아봐야 32만원이다. 기름값도 안나온다. 구제사업비가 어업인들의 주된 소득이 되는 기막힌 구조다. 뱀장어는 5~6월 한달 정도 반짝하고 보기가 어렵다. 그물 놓으면 어쩌다 한마리 정도 들어가는 꼴이다. 이렇게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살리기 위해서 기포기를 틀어놓아야 하는데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다."

몇 마리 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띄우는 일이 이들에게는 '헛일'로 통하는 현실이 됐다.

# 생태계와 수질을 걱정하게 된 배경

정진섭씨는 치어방류사업 확대, 외래어종을 잡아 판매할 수 있는 구제사업비 확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은지역 대청호 어업구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토종 물고기가 궁금했지만, 이곳 어부들의 관심은 토종물고기의 어종보다 그들의 생존 자체에 집중돼 있었다.

어족자원 자체가 고갈될 처지라는 게 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었다. 정씨는 "고기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종어종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는게 우선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상철 사무국장은 "쏘가리 치어 방류를 하면 배스가 와서 주워먹는다"며 "300만 마리 넣으면 3분의 2는 잡아먹힌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치어방류사업과 외래어종 퇴치를 위한 구제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환경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진섭 씨는 외래어종을 잡기 위해서는 정치망 허가를 더 내줘야 한다며 일단 호수를 살리고 고기 잡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망을 사용하는 사람만 구제사업을 할 수 있는데 늘어나는 외래어종에 비하면 잡는 사람이 너무 적다"며 이같이 말했다.

뻘로 변해버린 호수의 바닥도 걱정이다. "쏘가리는 돌과 바위, 교각 밑에서 주로 잡히는데 지금 대청호의 물 속은 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 거푸집 같은 것을 넣어주어야 한다. 수몰 전, 이곳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물의 깊이나 지역별 특징들을 대략 알고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뻘도 덮혀 있다"며 "해수면처럼 인공집을 만들어줘야 고기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 부회장도 겸직하고 있는 그는 전국내수면공동체가 74개인데, 해수면에만 예산이 집중돼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내수면 지원사업비는 토종어류 치어방류사업과 노후어선 교체지원사업, 그리고 공동체별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 쓰이는데 해수면에 비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집을 넣어주거나 어장 휴식제를 운영하거나 외래어종 퇴치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필요하면 어장휴식제도 … 위기의 어족자원

올해는 심한 가뭄으로 대청호에 녹조가 심해 거의 작업을 하지 못했다. 올해는 유래없는 극심한 가뭄으로 약 80m가 넘어야하는 대청호 수면이 60m까지 내려갔다. 수심이 얕으니 자연스럽게 수온이 올라가고 심각한 가뭄에 뻘로 변한 호수의 바닥, 녹조까지 겹치면서 설상가상 어업활동은 긴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성수기때는 붕어의 경우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어업은 5~6월, 9~10월 한철인데 올해는 가뭄 등으로 수입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대청호는 붕어 잉어 등이 많이 잡히고 겨울에는 빙어가 제철이지만 초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경우 외래어종인 배스가 30㎝이상 자라 토종어류를 방류해도 70%는 모두 이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상당수의 어업종사자들이 외래어종 퇴치사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김상철 사무국장은 "물고기가 없는데다 어쩌다 한마리 잡으면 팔기도 어려워서 매운탕거리로 지인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이들은 내수면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종어종을 살리기 위해서는 붕어 쏘가리, 동자개, 뱀장어 등을 많이 방류해야 한다는게 어부들의 생각이다. 어업종사자들은 이른바 어장 관리를 위해 쓰레기 치우기 등 수질보호에도 나서고 있지만 내수면 현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때로 아쉽다. 농사를 짓거나 식당을 운영하지 않으면 고기만 잡아서는 생활할 수 없는 대청호의 어부들.

정진섭씨는 "보은에는 78년부터 고기잡이 배를 몰았던 어부 등 오랜기간 고기를 잡아온 어부들이 많지만 대추농사를 짓거나 농업 겸하며 틈틈이 고기를 잡고 있는 상황"이라며 "필요하다면 어장휴식제를 실시해서라도 어족자원을 지키는데 정부와 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다없는 충북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하는 내수면 어부들. 7월의 긴 가뭄 끝에 만난 대청호 어부들은 말라 속살을 드러낸 호수의 진흙 바닥처럼 고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 기획취재팀

그늘 한 점 없는 고깃배에 몸을 싣고 종일 작업에 나서는 대청호 어부들은 만선의 기쁨을 누려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올해 찾아온 극심한 가뭄 탓에 낮아진 수심과 녹조로 토종어종을 잡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생태계교란어종만이 그물에 걸려든다. 그래도 어부라서, 오늘도 배를 몰고 나온 대청호의 어부는 무거운 마음으로 녹조 낀 그물을 걷어 올린다.

대를 이어 대청호에서 어업활동을 하고 있는 정진섭씨는 "요즘 같은 날에는 배스나 잡아 파는 게 수익의 전부"라며 내수면 어부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토종어종 방류사업과 생태계교란어종 퇴치 지원비 인상을 요구했다.

녹조 낀 그물을 힘겹게 끌어올려 소쿠리에 쏟아 낸 것은 붕어나 장어 같은 판매어종이 아닌 생태계교란어종 블루길과 배스가 전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기획취재팀= 김정미 팀장, 박재광, 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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