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아침 산행길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분디나무 꽃들이 연한 녹색의 미소를 피웠다. 잎에서는 향기가 나고 꽃은 가지 끝에 산방꽃차례를 이루며 피어나는데 수줍은 듯 나그네를 반겼다. 팔월의 햇살과 바람을 품고나면 갈색열매가 익어갈 것이고, 가을빛 가득한 어느 날 작은 씨앗들이 하나 둘 밖으로 쏟아질 것이다.

분디나무 씨는 국의 향미료로 쓰거나 기름을 짜고, 열매는 약으로 쓰인다. 효소나 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복부냉증을 제거하고 구토나 설사를 그치게 하며 피부염증을 제거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디나무 줄기는 오래전부터 젓가락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우리나라 문학 최초의 달거리 노래인 고려가요 '동동'에 이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십이월 분디나무로 깍은 아아 소반의 젓가락 같구나. 내 님 앞에다 가지런히 놓았는데 손님이 가져가 뭅니다"라며 노래했으니 분디나무 젓가락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다.

분디나무는 일명 산초나무라고 부른다. 충북지역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초정약수의 초(椒)가 바로 산초나무를 뜻하는 한자다. 산초나무처럼 톡 쏘고 알싸한 맛이 나는 우물의 마을인 것이다. 분디나무와 초정약수의 운명같은 만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초정에 행궁을 짓고 양로연을 베푸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젓가락과 청주의 인연은 이 뿐만이 아니다.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즐겼으며 금속과 은수저를 함께 이용해왔다. 이 때문에 금속수저 유물이 많이 출토됐는데 청주는 금속문화와 청동문화가 크게 발달한 곳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수많은 금속수저 유물이 보존돼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 역시 청주에서 인쇄되지 않았던가. 분디나무와 초정약수, 그리고 금속문화의 청주는 운명처럼 젓가락문화를 품고 성장해 왔던 것이다.

게다가 청주는 오랫동안 교육의 도시라는 애칭과 함께 청주향교를 시작으로 수많은 교육기관이 생명교육을 펼쳐오고, 수많은 의인과 학자와 예술가를 배출했다.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생명문화도시'라는 슬로건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열고 있는 있는데 올 가을에 열리는 젓가락페스티벌도 이러한 가치를 문화적으로 재해석하고 세계화 하려는 것이다.

이참에 청주를 세계적인 생명문화, 젓가락문화의 아지트로 만들면 좋겠다. 분디나무를 활용한 옻칠자개 젓가락을 상품화하고, 금속젓가락 등 다양한 디자인의 젓가락 문화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내 젓가락 갖기 운동, 가족 젓가락 갖기 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 초정약수 일원에 분디나무 공원과 거리를 조성하고 시내의 주요 골목길도 분디나무로 특화해 공공미술로 발전시켜보자. 분디나무의 열매 등을 활용한 향신료나 발효식품 등 음식문화를 특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바른 먹거리를 고민하는 시대에 청주만의 대표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젓가락장단도 의미있을 것이다. 젓가락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해 전시, 학술, 경연대회 등을 펼쳐나가며 아시아인뿐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유럽까지도 젓가락장단에 취하게 해야 한다. 젓가락질 잘하면 두뇌발달에 좋고 생명문화를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젓가락장단 공연콘텐츠도 만들자.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세시풍습과 젓가락장단 문화를 국악뮤지컬 등으로 특성화하면 세계가 감동할 것이다.

무엇보다 젓가락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마을 전체가 젓가락 문화상품을 만들어 팔고, 젓가락 장인을 육성하고, 젓가락갤러리, 젓가락박물관, 젓가락체험관, 젓가락음식관, 젓가락축제 등을 통해 흥겹고 살맛나는 도시로 발전하면 좋겠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이어령 명예위원장은 "젓가락은 생명의 시원(始原)이고 모든 문화를 포용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생명문화도시 청주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맑고 향기로운 청주정신을 세계로, 미래로 뻗어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청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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