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국, 홍콩 3국이 아시아영화의 연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만든 옴니버스 영화 「쓰리」는 여러모로 의욕적이다. 기껏 내실을 키워봤자 헐리우드 문화산업의 토실한 먹거리쯤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영화변방 아시아국가들의 활로를 타개하겠다는 산업적 기획에서도 그렇지만 그 결과물 또한 꽤 흥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포를 유일한 키워드로 공유한 「쓰리」가 궁극적으로 「투」 쯤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아쉽다. 신흥 아시아 영화강국으로 부상하는 태국의 뉴웨이브 선두 주자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휠」이 3각 균형구도를 떠받치기에는 현저히 공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태국의 토속 색채와 소리를 때로는 과도하게 보여주는 「휠」의 공포는 「전설의 고향」이 그렇듯 너무 친숙해서 도리어 흥미가 떨어진다.
 또 같이
 그렇게 「휠」이 물러선 자리에 남은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와 홍콩 진가신 감독의 「고잉 홈」은 어찌보면 기이한 데칼코마니 같기도 하다. 딸 하나를 둔 젊은 부부의 사진으로 각각 마감되는 엔딩의 우연한 대구처럼, 황량한 신도시나 도심 한가운데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을 주목한 카메라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질감과 경로는 거의 극과 극이다. 「메모리즈」가 꺼칠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면 「고잉 홈」은 의외로 멜랑콜리한 정서로 넘쳐난다. 김지운감독이 공포로 일상을 덮어버린다면, 진가신 감독은 공포를 지나 판타지에 이른다. 김혜수·정보석네 가족사진은 서늘한 슬픔으로 기억되지만 여명네 가족사진은 슬픔의 와중에도 따스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이다.
 따로
 「고잉 홈」에서 진가신감독이 건네는 사랑이야기는 불가피하게 「첨밀밀」을 떠올리게 한다.
 고층빌딩숲에 질식할 것처럼 포위된 퇴락한 아파트 황량한 풍경 속에서 회귀를 꿈꾸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괴기스런 공존은 끝내 파국으로 마감된다. 결국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의 슬픈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불연속성에서 흔들리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환기시키면서 절절한 울림을 남기는 것이다.
 반면 김지운감독은 스타일에서 의욕적인 행보를 보인다.
 어두운 실내, 소파에 누워있는 남자에게 스멀스멀 다가가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시작된 「메모리즈」는 마지막까지 단 한 숨의 편안한 호흡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바짝 긴장돼있다. 대사를 배제하고 사운드를 증폭시키며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뒤섞는 방식과 극의 플롯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들에서 멈춰서 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것이 발휘하는 공포효과는 만만찮다.
 특히 꿈이 현실로 변한다는 신도시 공간을 잡아낸 황량한 이미지들은 자못 무국적적이다. 텅 빈 아스팔트, 어지러운 공사현장, 뻘쭘하게 솟은 아파트, 그리고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표정까지 그 곳은 음울하게 가라앉은 푸른 빛에 포위돼있다.
 아파트 내부 혹은 등교하거나 귀가하는 친근한 길목 곳곳에서 느닷없이 공포와 직면하게 되는 그곳은 마치 유령들이 출몰하는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메모리즈」의 이미지가 갖는 강한 환기력은 이처럼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그토록 을씨년스런 무국적의 공포로 대체한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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