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끝없이 껍질을 깨면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 곧 삶이라는 것을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시절 이야기,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기의 고뇌와 방황을 1인칭으로 솔직하게 표현한 책으로 신비적 직관까지 담겨 있어 헤르만 헤세의 명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나는 최근 딸들에게 '데미안'을 읽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 물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알퐁스도데의 '별' 등 불멸의 명작도 함께 추천했다. 지루한 장마와 뜨거운 태양을 품지 않으면 알곡진 열매가 맺을 수 없듯이 사춘기의 성장통을 책과 지식과 창조와 열정이라는 그릇에 담지 않으면 아름다운 내일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날의 동아시아문화도시 교류사업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프로그램 중심으로 펼쳐졌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3국이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가치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청주, 칭다오, 니가타가 각각의 멋과 맛과 결과 향기로움을 담고 품는 일이기에 도시마다 색다른 프로그램이 돋보였다.

7월 말에는 일본 니가타에서 한중일 청소년 45명이 모였다. 4박5일간 바다와 강과 푸른 들녘, 그리고 역사와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니가타의 속살을 엿보며 다양한 문화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춤추고 노래하고 음식으로 교감하는 것은 기본이고 니가타의 만화애니메이션 체험까지 곁들이면서 사랑과 감동의 무대를 만들었다. 언어가 다르다고 걱정하는 것은 이들에게 사치에 불과했다. 마음이 통하고 눈빛이 마주하는 순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 모두 하나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4일간 청주에서는 니가타와 청주의 청소년 30명이 모였다. 작열하는 태양은 어둠의 도시까지 삼켜버릴 듯 온 종일 뜨겁고 눅눅했다. 청소년들은 청주향교에서 삶의 근본을 찾아 신발끈을 고쳐 매는 것을 시작으로 일정을 소화했다. 국립청주박물관과 고인쇄박물관에서의 역사여행, 청남대와 벌랏한지마을에서의 생태와 예술체험, 청주삼겹살과 함께한 우정과 음식의 만남, 뷰티체험과 캘리퍼포먼스를 통한 특별한 인연, 똑 쏘고 알싸한 초정약수의 목욕체험…. 청주가 아니면 불가능한 체험들이 아니던가. 100년 된 한옥식당에서 삼계탕으로 마무리하고 헤어지는 순간,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서 동아시아의 희망을 보았다.

중국 칭다오에서는 8월 4일부터 8일까지 박물관 미술관 탐방에서부터 음식체험, 영화체험, 요트체험, 녹차잎따기 행사에 이르기까지 신나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동아시아문화도시의 가치를 시민의 이름으로, 청소년들의 문화나눔으로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어디 이 뿐인가. 이달 12~15일 일본 니가타에서는 한중일 3국의 어린이 100여 명이 모여 '우리는 하나'를 주제로 한 합창교류행사와 한중일 3국과 러시아 어린이까지 함께하는 문화탐방도 이어졌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노래로 하나가 되고, 노래로 꿈을 키우고, 노래로 평화를 이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값진 시간이 있을까. 올 가을 청주에서 젓가락페스티벌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경연대회를 열 것이다. 경쟁이 우선시되는 경연대회가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하나되는 무대를 만들 것이다.

삶이라는 무대는 항상 기회와 위기가 교차한다. 좋거나 나쁜,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것이 뒤섞여 있어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 아픔의 마디와 마디를 견디고 일어설 때마다 삶의 그릇이 커진다. 아이들에게 낯선 경험과 색다른 체험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청년이여, 더 큰 사랑을 찾기 위해, 더 아름다운 날을 위해, 더 멋진 내일을 위해 함께 손잡을 것. 노래하고 춤을 출 것. 아픔을 보듬고 위로와 배려와 협력의 가치를 살릴 것. 동아시아가 다투지 않고 형제처럼, 오누이처럼 가슴비비며 살아갈 것. 지구촌을 무대로 마음껏 희망할 것. 이 모든 순간들의 주인이 될 것. 청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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