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문화를 지나서
토건문화를 지나서
  • 중부매일
  • 승인 2015.09.0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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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철없는 초딩 아들은 아직도 청주를 시골이라고 한다. 여행 갈 때 지나는 어느 소읍이나 마찬가지로 치킨집 브랜드 몇 개 더 있는 시골이어서 어서 빨리 광역도시가 되어야 하고 지하철이 들어서 서울 못지않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화를 할수록 배는 산으로 가고 초딩의 언술 앞에 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시인하게 된다. 도시는 더 크고 배불리는 도시를 꿈꾸는 게 맞지 싶어 머지않아 말을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그곳으로 보내주마 하고 속없는 말을 해본다. 아들 말대로 청주광역시가 되고 청주특별시가 되면 이곳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복합쇼핑몰 몇 개는 더 들어올 테고 문화회관 비슷한 시설들 또한 으리으리한 위용을 자랑하며 들어서겠지. 빌딩숲이 되어 지하로 지하로 숨죽인 듯 다니겠지. 딱히 시원스레 속을 뚫어줄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고 일찍이 토건문화가 자랑해왔듯이 삶의 질이 몇 미터 늘어나는 것 따위의 수치만 느껴질 뿐이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깨어났는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충주 작은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림책 작가인데 문화예술인들의 작업실을 활용한 오픈 스튜디오 지원사업을 구상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과 예술가들을 기리는 일종의 문화지도를 만들고자 한다는,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원석처럼 빛나는 문화원형을 살려 문화컨테츠로 만들어 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노란다. 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절로 기운이 생기고 흥이 나는 말이었는데 지자체에 말해보면 그것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오라고 한단다. 몇 십 억은 들어가는 사업으로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이 오고 1년이면 얼마만큼의 수익이 날 수 있는지 답이 나오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토건문화가 따로 없다. 문화전수관을, 기념관을 메머드급으로 만들어서 자랑할 수 있는 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채울지는 나중 일이고 일단 세우고 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는 토건문화, 전시행정의 속편을 보여주는 것이다. 훌륭하게 테이프 끊고 나면 잡초 무성한 공룡 뼈대로 돌아가는 토건문화가 아닐 수 없다. 문화융성이라는 숭례문 현판 같은 건 크게 달았지만 무엇이 융성인지 모를 잡종문화만 웅성웅성할 뿐이다. 눈 먼 돈을 누가 먼저 가져가서 지자체의 치적을 올려주면 끝인 단명문화가 아닐 수 없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모성 축제만 판을 치고 우리 지역만의 즐길거리와 누릴거리를 만들어보자고, 작은기술을 활용하여 사람을 모으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문화,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대화를 하자는데 인색하고 더 나은 계획서를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저 서해, 동해바다보다 못한 쇼핑몰과 역사관, 기념관이나 세우지만 정작 사람들을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유령도시를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마을을 지나 더 큰 광장으로 모여들어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에 무조건 성과 위주로 짓고 보는 토건문화, 슬로건부터 만들고 보는 문화융성은 지양해야 한다. 저마다 몸과 마음의 보이지 않는 물길과 바람길을 터서 소통하게 하는 문화컨텐츠를 가진 곳이면 시골이어도 좋다.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지금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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