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성경에는 '차갑든지 뜨겁던지 하라'라는 구절이 있어 이른바 미지근하고 분명하지 못한 경우를 나무라는 교훈이 있다. 옛 말에도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며, 1973년 김기덕 감독이 만든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영화 '시거든 떫지나 말지'라는 작품도 있었다. 9월은 감나무에 달린 감이 익어가는 시절이다. 아직은 '땡감'이라 맛을 볼라치면 떫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채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땡감이 얼마나 떫은지는 먹어본 사람은 안다.

 이 땡감을 싫어하고 비하하여 하는 말이 괴팍스러워 대화하기를 싫어하는 노인을 '땡감영감'이라고들 한다. 나이가 원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 늙은이 소리를 들어도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경우나 멀쩡한 사람이 철딱서니 없는 짓을 하면 '시거들랑 떫지나 말지'하고 비아냥대고는 한다. 지난 8월 23일은 처서(處暑)이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지 반달이 지났는데도 폭염이 식을 줄을 모른다. 올여름이 유난히도 무더웠던 것은 아마도 인간이 자초한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2년간을 준비해온 '2015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드디어 개막하는 날이다. 청주시에서 치러지는 가장 큰 행사이며, 국제적인 행사이다. 전 세계 45개국에서 7,500여점의 공예중심의 작품이 출품되어 세계의 공예예술시장을 선도하는 예술의 축제이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서는 폐허처럼 방치된 청주 옛 연초제조창의 거대한 벽면에 85만 시민의 꿈을 담은 CD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마치 '여의도 63빌딩'을 옆으로 뉘어 놓은 규모(30mX180m)의 벽면에 기능을 잃어버린 환경유해물질 콤팩트디스크(CD)로 재활용의 조형물을 탄생시켰다.

 비엔날레는 청주시만의 행사도 아니며 우리나라에 국한된 행사도 아니다. 공예예술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예술축제이고 지구인들의 잔치이며 청주시민들의 자존심이다. 85만 '청주시민의 꿈'이란 주제로 만들어진 CD프로젝트는 세계기록에 도전하는 규모로 '기네스 북' 기록에 도전하였다. 드디어 9월15일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기네스북총괄본부'에서 파견한 심판관이 청주를 찾아왔다. 금속활자 '직지' 다음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첫 사례인지도 모를 일이다.

 근대산업문화 유산인 옛 연초제조창은 이미 국가에서 '문화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하였기에 더욱 뜻 깊다. 공예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가 될 시민프로젝트가 기네스북 세계기록에 등재 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행사를 준비하던 '조직위원회'의 애간장을 태운 '메르스'를 시작으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는 해소되었지만 불경기의 파장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이없는 현실이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내며 왕성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교수들도 굳이 지역행사라며, 청주가 왜 하필 공예냐며 18년 전 제1회 비엔날레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외면하고 축소하고 폄하한다고 도리어 많은 시민들이 걱정을 한다.

 일을 준비하다보면 놓치는 일도 허다하다. 일일이 보고 드려야 할 어른들도 많고 상의 드려야 할 전문가도 많다. 뒷말이 무성하다. 의회도 있고 시민단체도 있다. 언론사도 많고 방송사도 많다. 일일이 보고 드리고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고 송구하다. 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중요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비엔날레가 종료되면 할 말도 참 많을 것 같다. 기회가 되는대로 자책도하며 반성도 할 것이다. 비엔날레는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시거든 떫지나 말고, 짜거든 맵지나 말든가, 얽거든 검지나 말 것이지!' 공예가 예술인가 아닌가의 논의는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수상작인 '임흥순'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 공단>으로 이미 판결이 난지 오래이다. 예술은 장르를 파괴하고 새로움을 구축하고 확장과 공존하는 것으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며 예술의 사회적 활동영역을 견인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석양 무렵 지혜로운 결정과 현명한 처신으로 자신의 삶은 물론 주변까지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음은 등산 한 뒤 하산하는 과정과 유사할 것이다. 이제 내일이 시작일 뿐이다. 청주시에서 치러지는 공예비엔날레 역시 시작만큼 중요한 것은 마무리다. 미리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현장을 돌아보며 관객들의 불편함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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