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조직위 사무국장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그 어떤 건강보험보다 든든한 마음의 보험이다. 낯선 풍경을 따라 골목길과 숲길과 문명의 그 길을 자박자박 걸을 때마다 내 영혼이 유순해진다. 여행을 통해 세상의 밝은 빛을 어둡고 눅눅한 내 안의 그곳에 비추어 본다. 여행을 통해 만난 새로운 풍경과 인연과 사랑을 차곡차곡 담는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의 숲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푸른빛으로 가득하다.

길 위의 나그네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어야 하며, 낯선 향기와 음식을 향해 온 몸의 세포가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의 경우는 오랜 훈련과 숙달된 맛이 있어 새로움 앞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여행길에 배탈 나서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낯선 곳에서 만난 풍경과 맛과 사람의 인연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니 그 존재의 결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올 한 해 중국과 일본은 옆집 드나들 듯 했다. 그 속에서 만난 도시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과 이야기, 그리고 음식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했던가. 조화롭되 분명히 다른 것을 느끼고 즐기며 우리만의 고유한 삶과 멋을 찾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음식문화만 제대로 이해해도 국가간의 문명을 읽을 수 있으며, 음식문화 속의 비밀을 찾아내도 그 지역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외로움을 타는 나그네에게 음식은 진정제이자 비타민 같은 것이다.

비윌슨은 '포크를 생각하다'라는 책에서 "음식은 연료이고, 습관이고, 고급한 쾌락이자 저급한 욕구이고, 일상에 리듬을 부여하는 요소이자 부족할 때는 고통을 안기는 요소"라고 했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이어령 명예위원장은 '우리문화박물지'에서 "서양의 식탁은 각자의 것으로 나누어져 있고 논문을 쓰듯 식사코스가 정해져 있지만 한국의 겸상은 동시에 차려놓고 여럿이서 함께 먹는다. 서로 양보하고 상대방과 협력을 하지 않으면 그 식사는 불가능해진다. 십첩반상의 현란한 음식 위를 젓가락이 왕래하는 순서는 룰렛판을 굴러가는 구슬같고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와도 같이 자유분방하다"며 동양과 서양의 음식문화를 비교했다.

한중일 3국속에서도 음식문화는 그 맛의 깊이와 유희가 분명히 다르다. 한국은 2천 년 넘는 바이오공화국답게 발효음식을 중심으로 식탁이 꾸며진다. 장이 맛있는 집은 모든 음식이 맛있다는 전설처럼 보약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음식이 많다. 여기에 쌀밥과 국은 기본이고 아름답고 화려한 반찬이 식탁위에서 합창을 한다. 때로는 비빔밥이 되기도 하고, 숭늉처럼 고소한 맛을 내기도 하며, 고추장처럼 맵고 진한 멋을 풍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식탁은 간소하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먹는 한국과 달리 1인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깊은 맛보다는 깔끔한 맛이 우선이다. 튀김과 소바와 스시를 통해 일본 음식의 달달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중국음식은 말 그대로 성찬이다. 기름에 튀기고 찌고 볶는 음식이 많지만 밑반찬이 없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모자람이 없도록 푸짐하게 준비해야 하고 지역별로 유행하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기름진 음식의 특성 때문에 보이차와 술을 많이 마시는데 중국 전역에는 칭다오주, 마오타이주, 연태고량주 등 5천여 종의 술이 있고, 수억 원을 호가하는 보이차도 있을 정도다.

성석제는 '칼과 황홀'이라는 책에서 "일반적인 배고픔이 아닌 외로움으로 촉발된 배고픔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하루 세 번의 황홀한 여행이 필요하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고 했다. 마땅하고 옳은 표현이다. 음식이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맛과 향과 결로 다가올 수 있지만 때로는 아득히 멋 곳에서 벼락처럼 내 심장을 후벼 파기도 한다. 그 충격에 감동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며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에 젖는다. 분명한 것은 그 속에 생명과 문화의 근원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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