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작가.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새 교과서를 받으면 달력으로 싸서 때가 있었다. 그 때의 교과서 내용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최소한의 교과서에 대한 예의는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헌 달력으로 새 교과서를 싸던 때까지다.

표준전과와 동아전과이던가, 교과서를 낱낱이 거들어주던 참고서가 나오면서부터는 교과서에서 멀어졌다. 교과서에 밑줄 치고 돼지꼬리 표시를 하며 시를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놓았던 교실이 싫어서일 지도 모른다. 그럴 시간에 시집을 읽고 고전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창밖만 바라보던 시절에는 교과서가 이렇게 말썽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최근 모 신문에 어느 단체 총장이 역사교과서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교과서도 좌편향에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길러준다며 모든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여당 대표는 이참에 전국을 돌며 무지한 국민들을 깨우치도록 강연해야 한다면서 마치 대동아전쟁에 젊은 학도들이여, 한몸 불살라 나아가라고 동원령을 내리듯 부추겼다. 엄연한 역사를 사관도 없이 붓 가는 대로 쓰고 싶은 것이다.

봉건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주인의 역사로 뜯어고치고자 하는 것이다. 몇 백 번의 침략에도 백성의 안위를 위해 힘없는 노예의 나라, 사대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배알도 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길을 막고 묻고 싶다. 정령 이런 나라가 좋으냐고. 이제 판단력을 잃어버려 가진 자의 역사만을 국정화하며 제2의 건국을 하겠다는 식이다. 기어코 이기겠다고, 누리겠다며 저들만의 나라를 만들려는 것이다.

역사는 국민과 역사학자가 만들어가야 할 일이라며 천막 야당시절의 말을 뒤집고 왜곡되고 미화하는 역사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부끄러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정권을 되찾을 셈으로 한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몰라도 너무 모른 우리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전승이라고 했건만 그들이 내걸은 기치에 잔득 움츠려 기선을 제압당하고 반기만 들고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들은 쓰러져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나선 적도, 죽어가는 백성을 위해 밥 한 술 건네지 못하고 끝내 사랑할 줄 모르는 반편의 정신을 가진 나르시스트들이다. 교과서만 달달 외워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버리고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억대의 개런티에 연기에만 신경 썼을 뿐이라던 배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교과서만 제대로 배우면 줄을 서서 맨 윗자리에 올라갈 수 있고, 국가관에 맞는 국민들을 양산하겠다는 포석이다.

초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반시민적인 국가프레임을 짜기 위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말 섞지 않겠다는 것이다. 절대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저들에게는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천만 대군이 불러 줄 때만 기다리며 구국의 횃불을 들고 있지 않은가.

어느 시인은 우리 시대의 폐허가 드러났다고 했다. 바닥을 인양할 기술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라고 했다. 빨간 펜, 파란 펜으로 교과서에 밑줄 쳤던 우리들 스스로 이 폐허의 시대를 인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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