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의 어부를 찾아서] <6> 괴산 달천 어부 여영회

곱게 물든 단풍을 마주하고 배를 띄운 여영회씨가 첫 번째 그물을 힘차게 끌어올리지만 손가락만한 물고기만이 따라 올라온다. 그는 "허탕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나서지만 잡히는 날은 손에 꼽는다"며 어부의 고기잡이가 부업으로 변한 세월을 한탄했다.

괴산군 청천면 송문로 운교길. 괴산호에서 어업활동을 하는 젊은 어부들이 사는 동네다. 괴산호 상류에 위치한 운교는 들미산을 등지고 마을 앞에 달천이 흐르고 있는데 뱃길을 따라가다보면 산막이 옛길과 충청도 양반길을 찾는 등산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운 단풍으로 물든 산과 바위, 섬뚝 나무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절경을 선물하는 가을엔 산막이옛길을 찾는 관광객들도 부쩍 늘어나고 유람선 운항 횟수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고기잡이 배를 띄우는 횟수는 줄어들게 된다. 지난 9일, 괴산호 상류 달천에서 어부 여영회(48)씨를 만났다. / 편집자

산막이 옛길 족두리바위 앞에 배를 댄 어영회씨는 "유람선이 뜨면 파도가 일어 고기 잡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오늘도 허탕 … 잡았다 놓아주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청천 운교는 괴산댐 상류에 위치한 달천에 속하지만 유속이 빠를 뿐 고여 있는 담수호여서 외래어종이 많이 나온다. 쏘가리와 장어가 많이 올라오는 송계계곡 어부들의 생활은 꿈만 같은 얘기다.

여영회씨는 자망으로 고기를 잡는다. 어제 쳐 놓은 그물을 건져 올리기 위해 부표를 잡아 올리자 커다란 돌덩이가 따라올라온다. 기우뚱. 돌무게에 작은 배가 한쪽으로 쏠리며 기웃한다. 딱 그 돌무게 만큼의 고기가 따라올라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참마자, 모래무지, 동자개가 따라올라왔다. 그나마 크기가 너무 작다. 두번째 그물로 이동했지만 잉어 한마리가 딸려왔을뿐 양도 크기도 신통치 않다. 여영회씨는 손바닥 만한 잉어는 쓸 수 없다며 고기잡은 통을 통째로 뒤집어 물속으로 훌훌 털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치어들을 하나 하나 주워 물 속으로 던져 넣는다. 오늘도 허탕이었다.

잡았다 놓아주고, 잡았다 놓아주고. 새벽같이 배를 띄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고기잡이가 부업이 된 현실, 아니 부업 벌이도 안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부면서 농부다. 여름에는 새벽 4시에서 5시 30분에 조업을 나가고 요즘은 새벽 6시에 그물을 건져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낮시간엔 배추와 적채 농사를 짓고 오후가 되면 다시 그물을 놓는다. "아침 일찍 고기를 잡아와야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서두르는 겁니다"

# 조팝나무 꽃피면 붕어를 잡지요

식당을 운영했던 집 앞엔 '운강식당'이라는 간판이 여전하다. 외진 시골마을이었지만, 싱싱한 민물회와 매운탕이 좋아 운교를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형님이 잇고 다시 그가 받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그때만 해도 고기가 그냥그냥 나왔어요. 장마 한 번 지고나면 150~200㎏ 정도를 잡아올렸으니까요. 그때도 자망 허가가 있었는데 저녁에 그물을 놓고 아침에 걷어올리면 쏘가리는 3~4㎏를 잡았습니다. 붕어도 나오고 메기, 빠가사리(동자개와 대농갱이를 이곳 사람들은 빠가사리라고 불렀다)도 잡혔죠 신났습니다. 옛날 얘기죠. 지금은 몇 ㎏ 잡기도 어렵습니다."

계절은 여전한데 물 속 환경은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봄에 붕어 산란하는 시기는 조팝나무 꽃피는 시기입니다. 그때 시작해서 찔레꽃 필때까지 붕어가 많이 나오죠. 쏘가리는 그 다음입니다. 5월부터 6월까지 산란하는데 쏘가리가 붕어와 잉어 새끼를 잡어먹고 살기 때문이죠."

아버지의 고기잡이 배를 타고 산막이까지 갔던 시절은 몸은 고되도 보람이 있었다. 족히 1시간은 노를 저어 산막이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수 없어 마을 빈집에 묵어야 했다.

"노를 저어 가는 것도 힘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그물을 걷어가지고 와야 하니까 그곳에서 묵었지요. 그때는 물반 고기반이어서 고기를 톤으로 잡으니까 잡아와도 다 못팔 정도였어요. 어머니께서 광주리에 고기를 담아 이고 동네에서 물물교환을 했죠. 사기막에 가서 쌀과 수수를 바꿔오기도 했구요. 고기가 많은 만큼 가격도 무척 저렴했습니다."

치어 몇 마리… 그리고 팔기엔 작은 잉어 한 마리가 하루를 기다린 두 번의 그물질로 걷어 올린 수확이다.

#붕어와 쏘가리의 역전이 이뤄지다

여영회씨는 80년대 즈음으로 기억했다. 붕어와 쏘가리의 역전이 이뤄졌던 시기를.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여영회씨의 활동구역에는 붕어가 많이 올라왔다. 어린시절에는 주낙(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얼레에 감아 물살을 따라서 감았다 풀었다 하는 낚시어구)만으로 사과궤짝에 가득 담을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다. 팔고도 남아서 궤짝을 물 속에 넣어두고 보관하기도 했다.

과거 높은 대접을 받던 붕어는 이제 쏘가리 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쏘가리는 하천 중류 물이 맑고 바위가 많은 큰 강에 서식하는데 큰 돌이나 바위 틈에서 단독 생활을 한다. 바위 그늘에 있다가 먹이를 보면 순식간에 튀어나와 삼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살아있는 먹이만 먹는 특징이 있다.

요즘은 쏘가리 보기가 쉽지 않다. 여영회씨는 수생태계가 파괴된 이유가 외래어종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화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시골에선 개인 정화조를 통해 동네 생활 폐수가 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이뿐인가요?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농약도 빗물에 씻겨 강으로 흘러듭니다. 물고기를 잡아 팔고 있지만 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안타까움도 참 많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달천을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건져올리는 물고기를 통해 수생태계의 변화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위기의 신호였다.

"쏘가리는 바위 틈에서 살아요. 말하자면 고기가 숨을 집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어떤 곳은 바닥이 뻘화 되면서 고기 집이 사라지고 있고, 여기는 비만 오면 물을 빼버려서 고기 집이 남아 있질 않아요. 댐에서 퇴적층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뻘화되면 자연정화 기능이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중요한 건 고기가 숨을 만한 장소입니다. 예전엔 수초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죠. 인공집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산막이 옛길 붐비면 고기 못잡아

산막이 옛길이 유명세를 도 떨치면서 드문드문 건져올리던 고기잡이 일도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여영회씨의 허가구역은 갈론계곡 입구부터 마당바위까지 1.5km에 달한다. 극심한 가뭄에도 물 걱정은 하지 않을 만큼 저수량을 유지했지만 고기잡이는 신통치 않다. 특히 단풍이 제철인 가을은 시련의 시기다.

괴산호에서 어업권을 가지고 있는 어부는 모두 3명. 이들 가운데 한 마을에 사는 여영회씨와 양성국씨가 산막이옛길 인근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난 요즘, 어부들은 원치않는 비수기를 견뎌야 한다. 커다란 유람선이 다니면서 일으키는 물파도로 인해 호수의 물은 뿌연 상태가 지속된다. 그물에 물때가 지면 고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물 놓는 일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이중고다.

늦가을 물온도가 떨어지면 물고기의 활동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4월과 5월 반짝 수입을 올렸던 고기잡이는 7월과 8월이 지나고 나면 마음을 비우게 된다. 어업을 포기하거나 부업으로 유지하거나, 얼음 어는 12월 중순까지 해법 없는 고민이 반복된다.

"큰 장마 한 번 지나가야 블루길도 씻겨 내려갈텐데…"

그가 혼잣말 처럼 장마 얘기를 꺼냈다. 댐 상류지역이라 물 걱정은 덜했지만 그렇다고 가뭄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긴 상류이고 유속도 빨라서 비가 적당히 오면 더 좋지만 비가 안오면 물이 차도 고기잡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흐르는 물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도 고기가 그물로 들어오는데 댐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가뭄이 길어지면서 블루길 양이 늘어났다. 집으로 가져오는 고기의 양은 비례해서 줄었다.

그날도 텅 빈 고기잡이배에 어부와 기자 두명만 올라 앉았다. 마을 맞은편에 자리한 동산 뒤편으로 섬뚝에 자리잡은 가을 나무들만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미류나무가 꽉 차 동네사람들의 천렵장소로 인기 있던 섬뚝에도 시나브로 미루나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 기획취재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기획취재팀= 김정미 팀장, 박재광, 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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