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가 전라도(호남지역) 지역을 차별한 것이 아닌 당시 한반도 세력 구도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훈요십조의 이론적 배경이 된 것으로 여겨지는 풍수지리 이론도 상당 부분이 허구로, 후세의 시대적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주장이 함께 나왔다.
 훈요십조 10개항중 제 8항은 현재까지도 호남지역을 차별하는데 뒷배경 이론으로 작용, 지역감정 특히 정치계절이 되면 자주 인구에 회자돼 왔다.
 훈요십조 제 8항은 「車峴(차현)이남 錦江(금강) 이외의 山形地勢(산형지세)는 背逆(배역)하니 그 지방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로 되어 있다.
 대전대 김갑동(한국사) 교수는 최근 「역사와 비평」 가을호에 10쪽 분량의 「왕건의 훈요십조 재해석」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당시의 지리적 개념 ▶행정편제 제도 ▶잘못된 풍수이론 등의 근거를 들어 훈요십조가 후세의 「정치적 입맛」에 따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훈요십조 제 8항의 「車峴이남 錦江 이외의」는 지금의 충남 남부~전북 북부지역(공주, 논산, 전주) 일대로, 이를 호남 전역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행정편제는 도(道)가 아닌 9주 5소경으로, 9주 안에 전주와 무주만 존재하고 있었다.
 고려성종 때 도의 개념이 생겨났으나 이때도 전북은 「강남도」(금강 남쪽), 전남은 「해양도」(바다에 면한 도)로, 전라도나 호남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훈요십조의 이론적 배경이 된 것으로 여겨지는 풍수이론에 대해서도 후세에 의해 지리적 개념이 상당부분 곡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금강의 형국이 반궁수(反弓水) 형이고, 전라도 물은 산발사하(散髮四下ㆍ4개 강이 흐트러진 머리카락 모양으로 사방으로 흩어짐) 형이라 풍속이 거칠고 인재가 나오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교수에 따르면 발원지를 덕유산이 아닌 충북 음성으로 정하면 금강은 반궁수(수도 개성을 향해 활을 쏘는 모양) 형이 아니고, 전라도 물 또한 4개 강(섬진강, 영산강, 금강, 만경강)중 섬진강을 제외한 3개 강 모두는 서해로 흐른다.
 김 교수는 결론으로 『태조 왕건이 「차현이남~금강」 출신 사람을 경계하라 한 것은 당시 후백제 세력이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이를 호남 전역으로 확대, 지역차별 이론으로 차용하는 것은 논리비약』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근거로 전주는 후백제 근거지(끝까지 저항), 공주ㆍ논산는 후백제 세력지인데 비해 전남출신인 도선(풍수대가), 신숭겸, 나총례, 임원후(의종, 명종, 신종의 외조부) 등은 중앙 요직에 등용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러나 『태조가 제 8조의 유훈을 남긴 것은 후백제 잔존세력을 그만큼 무서워한 것인 만큼 지금의 공주, 논산, 전주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며 『다만 왕건이 이들을 마지막까지 포용하지 못한 것은 인간적인 실수』라고 밝혔다. / 조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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