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경영학과 교수
요즘 한국 경제가 어렵다. 경제 전문가들도 특별한 원인을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의 글로벌 경제문제와 소소한 국내 경제원인을 꼽지만 특별한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설명하던 고유가, 대북문제, 노동계 파업, 미국경제 등으로 이슈화 하기는 어렵다. 특별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국가와 국민의 빚은 늘어가고, 직장을 잃는 사람과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늘어만 간다. 하지만 매스컴은 민생과 다른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대통령이 문제라는 사람들도 있고, 정치인이 문제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병이 난다면 환경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처럼 국가 경제 침체 원인에 특징적인 것이 없다면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럼 주도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계층은 누구인가.
한국 경제는 사실상 행정부와 입법부의 책임 하에 있다. 한국은 정부주도의 경제 드라이브를 거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부 권한 하의 경제에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행정부 수반과 입법을 책임지고 있는 정당 소속의 정치인의 역할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내 주요 정당은 '새 누리당'과 '새 정치민주연합'이다. 체언을 수식하는 관형사이니 띄워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를 띄워 쓰기에는 정치인들은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가 얼마나 될까. 그렇다. 새롭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라는 관형사로 시작한다. 사전적으로는 지금까지 없던 것이 처음 생겨나거나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되어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품사이다. 상식적으로도 새로운 것을 지향한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힘을 받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의미의 품사이지만 한국 정당의 명칭에 붙어 있는 '새'를 보고 신선함을 느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새'를 떼어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기업에 근무해 본 사람들이 말하는 무능한 관리자 1순위는 의사결정을 못하는 관리자라고 말한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정치인들은 무슨 결정을 하고 있는가. 일부 정치인들은 또 새로운 정치 집단을 만든다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도(使徒)들은 새로운 것만 찾아 헤매는 삶은 공허함만 남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간적 새로움보다는 부패하고 낡은 것을 대체하는 질적 새로움을 찾아보라. 늘 새로운 만남으로 평생 우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작은 시장이 유지되는 것은 흥정하는 상인과 소비자 사이에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은 지적한다. 인간은 본인이 관심을 가질 존재조차 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말이다. 도덕관념을 지닌 유일한 생존체인 인간이 이러한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외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이 선(善)인양 도덕관념을 바꾸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에 부조리가 짙어지면 민중은 갈등하게 된다. 마치 햄릿이 악독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참을지, 성난 파도처럼 창검을 들고 싸워야 할지 고민한 것과 같다.
정치인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삶과 죽음의 선상에서 갈등하는 것을 원하는가. '새 세상', '새 천년'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내 걸었다면 '새'의 진실을 찾자. 공자는 옛날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거기다 새로운 것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새로운 것은 부가적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의미의 창조도 비롯할 창(創)에서 비롯되었다. 즉 새로움의 진실은 구습을 과감히 버리고 난 후,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것을 부가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란 어제보다 오늘이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은 이 나라가 일일명우일명 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