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나」.
 6.25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 도내 처음으로 유족회가 결성된다.
 수년째 진실규명 작업을 벌이고 있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곽동철 신분)는 『오는 10월 3일 괴산군 사리면 보도연명 유족회가 면사무소에서 유족회 결성식을 갖기로 했다』며 『이는 미국폭격에 의한 것이 아닌 자국민에 의한 학살로는 도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사리면 유족회측은 오는 10월 10일 오후 1시30분 도청에서 기자회견과 학살 증언대회는 3시간 동안 개최할 예정이다.
 앞서 사리면 보도연맹 유족회측은 지난 8월 21일 증평읍내 모 식당에서 유족회 결성을 위한 준비모임을 원혼이 숨진지 52년만에 처음으로 가졌다.
 보도연맹 사건이란 해방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에 의해 좌익활동 전력자로 몰려 무고하게 집단 학살당한 것을 말한다.
 당시 도내에도 5천여명 가량의 보도연맹원이 존재하고 있엇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상당수는 6.25 발발 보름을 전후해 집단학살을 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집단학살 원인에 대해서는 전선이 계속 남쪽으로 밀리자 ▶좌익 전력자의 친북활동을 막기위한 예비 학살론 ▶이승만 정권이 정권안정 차원에서 행한 정치적 학살론 등이 양립하고 있으나 전자를 지지하는 전문가가 많은 편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해방을 맞자 좌익 전력자가 좌익성향의 사람들은 국가차원에서 통제ㆍ관리하기 위해 「보호하고 이끌어 준다」는 의미의 「국민보도(保導)연맹」을 지난 48~49년 면단위까지 조직했다.
 그러나 동아백과사전에도 「가입자는 사상범이 주된 대상이었으나 거의 강제적이었고, 지역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로 나와 있듯이, 순수 좌익 사상범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괴산군 사리면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면내에서만 사담 32명, 송오 12명, 방축ㆍ하도ㆍ산정 각 6명, 중말 4명, 수성 7명, 진암 7명 등 80명의 보도연맹원이 50년 7월 9일(음력 5월 23일) 인근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옥녀봉 골짜기(사진)으로 끌려가 무고하게 희생됐다고 72명의 유족들은 주장하고 있다.
 사리면 유족회측은 그 근거로 ▶옥녀봉 골짜기 일대서 유골이 집단으로 수습됐고 ▶제삿날이 음력 5월 23일로 같은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수년째 진실규명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천주교 정평위 이효신 사회복음화팀장은 『유족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국가보상이 아니라 명예회복』이라며 『상당수 사람들이 「이제라도 제삿날 술잔을 떳떳하게 올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천주교 정평위를 비롯한 도내 10개 단체는 보도연맹 사건 외에 6.25 양민학살이 더 있다고 보고, 「민간인 학살규명 통합특별법 제정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조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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