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청주흥덕문화의집 관장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필사를 마쳤다. 치매 방지할 겸 성경책 한 권을 필사하셨다는 할머니도 그러셨을까.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정독하며 필사를 하면서 어제의 책이 아닌 오늘의 책을 다시 만난 느낌을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은 부분을 놓치고 그저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란 몇 구절만으로 알고 있던 저자의 너른 품을 새로운 책인양 느끼게 하는 단절감이란 무엇인지도. 역시 명작은 시대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게 한다.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무식은 아무 것도 낳지 않는 파괴만을 실천한다는 것 또한 실감하면서 필사를 끝냈다. 냉혹하게 무식을 직시하면 거기에는 검은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도 아는 척 비껴간 구멍이 있었던 것이고, 진보하지 못한 현실에도 설산 등반길에 만난 크레바스처럼 까마득한 검은 구멍이 보여 필사하는 내내 행간 행간이 눈을 흐리게 했다. 저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 변화마저도 더 이상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고,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밖에 내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어쩔 것인지, 그래도 진보의 콧잔등을 후려갈기는 보수 앞에서 다시 내리는 저자의 목소리는 '움직이라'는 것이어서 가슴이 뭉근해졌다.

모른 체 해서는 안된다. 무식해져서는 안 된다. 알고도 모른 척하며 돈과 권력을 지향하는 것처럼 무식해지지 말자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가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 위해 쉬지 않아야 한다고, 아울러 "어디로?" 또한 물어야 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과연 정신은 있는지, 고귀하다고,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그렇게 강조해왔던 영혼이라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식함의 극치와 맞닥뜨릴 때마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제발 공부해야 한다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다면 우리가 살아내야 하고 물려주어야 할 미래를 위해서라도 무식해지면서 손만 들어주는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몇 부분을 다시 넘겨보면서 '천 개의 고원'을 넘으며 필사중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온다. 천개의 고원을 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강조한다. 진짜 노래가 될 수 있는 외침이야말로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서로 다른 고원에 속한 노래들이 합쳐 만들어내는 리토르넬로(합주와 반주가 되풀이되는 음악의 한 형식)가 되기를 바란다고. 고원을 넘기도 전에 지쳐 흐리고 멍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해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쉬지 않고 읽고 또 읽으며 필사를 거듭하다 보면 한 고원쯤은 올라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했듯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뒤처져서도 다시 길을 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보다 건전하고 균형 잡힌 전망을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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