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가을 속에 고마리가 피었다.
 알록달록 곱게 색칠하고 나들이 나온 고마리는 눈길을 사로잡는 미인은 아니지만, 늘 거기에 있어 친근한 꽃이다. 줄기를 길게 올리고, 보일 듯 말 듯 쌀알만큼 작은 꽃을 피우지만 가지 끝에 오로로 모여 꽃뭉치를 이룰 때면 저요저요하고 손든 개구쟁이 고사리손 같다.
 흔한게 고마리다싶을 만큼 들이나 도랑, 냇가에서 볼 수 있는데, 가지 끝에 열 송이가 넘게 무리지어 피어도 그 크기가 고만고만해서일까, 고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을 들녘위로 흰색과 분홍색 꽃빛을 띤 고마리가 꽃잎을 활짝 펼칠 때면, 새로운 또 하나의 세상이 활짝 열리며 장관을 이룬다.
 꽃이 귀여운 모습이라면 잎은 한 번만 보아도 기억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마치 로마 시대에 기사들이 사용했던 방패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짧은 청동검 같기도 한데 잎끝이 뾰족하고 뒤쪽으로 잔가시가 있다.
 이처럼 벌레들을 침입을 막기 위한 보호막은 줄기에도 있는데, 아래로 향한 갈고리 모양의 가시를 손끝으로 살짝 흩으면 꺼끌꺼끌한 느낌이 든다.
 유난히 습지를 좋아하는 고마리는 물이 있는 곳이면 그 물줄기를 따라 띠를 이루며 뻗어나간다. 하지만 놀라운 이 생명력도 일손이 모자란 농부들에겐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꼴을 베어 소죽을 써도 묽어져 소도 싫어했다니 밉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렇게 홀대받던 꽃이 고마운 고마리가 된 데에는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물을 좋아하다 보니 줄기마다 뻗어 나온 뿌리가 발달하여 땅을 움켜쥐고 있으니, 비가와도 흙이 흘러내리거나 둑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그런가 하면 물속에서 자라는 고마리는 물의 속도를 늦춰줄 정도로 잔뿌리가 많이 나와 비 피해를 줄여주며, 그 뿌리 사이에 미생물이 자라면서 물속 노폐물을 품다보니 더러운 물을 정화해주기도 한다. 생활하수나 더러운 물이 흘러드는 곳에 더 많은 뿌리를 내리고 물을 정화시켜주니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던져주는 고마리는 고맙기 그지없다.
 이렇듯 잡초로 지나치기 쉬운 들꽃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생태계를 들여다보면 조화롭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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